아마추어들에게 문화예술이 필요한 이유-한재섭(광주영화비평지『씬1980』편집장)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1-07-20 조회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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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들에게 문화예술이 필요한 이유

 

한재섭(광주영화비평지1980편집장)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요셉 보이스의 말은 현대 예술씬의 강령 같은 언설이 되었다. 2010년대 전후로 전국 광역시들에 문화재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공립학교들의 주5일제 도입으로 쉬는 토요일 이른바 놀토가 본격화되어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미술관 박물관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문화재단과 문화예술교육센터, 문화의 집, 동사무소, 도서관 등 문화 관련 공공기관 들에선 공공교육에서 방기교육예술로 치환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슬로건처럼 쓰인 말이 바로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물론 문화예술교육이 모두가 예술가를 만들기 위한 교육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반복은 고정과 구속을 가리키므로-을 예술이란 낯선 감각을 통해 잠깐이라도 재구성하고 자기 삶을 좀 더 객관화하여 총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강좌와 강의, 참여형 워크숍, 체험형 활동, 개인과 공동체 리서치에 기반한 커뮤니티 예술부터 노년층의 개인사 구술까지 실로 다종다양한 문화예술교육들이 실천되고 있다. 특정 공간, 특정 계층, 특정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누리고 창작하고 비평하는 예술씬에서 그간 소비자(향유자)로만 위치 지워졌던 시민들도 당당하게 예술씬의 한 몫을 점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들의 현장에 가보면 강사와 수강생이라는 위치로 예술이 일방적인 전달과 수용만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실 그러한 운영방식이 가장 손쉽고 대중적인 예술교육이긴 하나 거기에서만 머물 때 예술은 생동감 있는 문화 민주주의로 진화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2008)는 여러 영감을 줄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마을의 발전소 때문에 자신의 뇌가 녹고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 제리(잭 블랙)와 파산 직전의 비디오 가게 점원 마이크(모스 데프)는 주인(대니 글로버)이 출장을 간 사이에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대여해준다. 제리와 마이크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든 이유는 발전소의 전기장치에 감염되어 자석 인간이 된 제리가 비디오 가게의 모든 영화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선주문 후제작비디오 대여 시스템은 주민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내막을 알게 된 사람들의 자원으로 영화는 점점 마을 주민들의 공동작업이 돼간다.

<고스트 버스터즈>,<록키>, <라이온킹>, <로보캅>, <러시아워2>,<드라이빙 미스데이지>, <맨인블랙> 등 할리우드 유명 영화들을 패러디한 초저예산 영화들을 주민들이 스텝과 배우가 되어 직접 만들면서 그들은 서로의 상처들을 알게 되고 교감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유명 재즈 가수의 출생지가 지금의 비디오 가게 자리라는 사실을(주인이 출장을 간 이유이고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지만) 알게 되면서 그를 위한 기념영화를 만들고 상영회를 열기에 이른다. 상영회 날 패러디한 영화들의 저작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할리우드의 제작자는 마을 사람들의 기운에 눌려 꼬리를 내리고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가며 막을 내린다.

 

문화예술교육과 연관을 지어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주는 메시지는 예술의 철저한 공동체성이다. , 영화를 찍는데 감독이고 배우고 스텝이라는 전문적 분업이 아닌 모두 아마추어지만 창작부터 상영회까지 모두가 하나씩 함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고대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예처럼 미술과 연극, 무용 등 예술은 처음부터 공동체의 제의로 출발했고 공동체의 활력을 넣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여기에 영화는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예술은 가정과 직장, 예술씬과 생활전선, 평일과 주말 등으로 파편화되고 분리된 사람들의 삶을 예술이란 행위로 하나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창작자-행위자만이 아니라 수용자-참여자가 필요하고,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분리와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예술의 권위가 아닌 예술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동시대의 흐름에 비췄을 때 시민들의 예술참여는 향유가 아닌 참여로 큰 물꼬를 잡아야 한다.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기 위해 예술교육을 받으러 가는 이유가 아님을 빨리 사업 기조로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권위 있는 전문 예술이 아닌 오히려 그러한 예술이 다룰 수 없는 아마추어의 진지한 재미와 열정을 어떻게 북돋울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위계가 아닌 오히려 갈수록 제도화에 길들여지는 프로들의 예술을 구할 수 있는 비상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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