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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기획이 되는 순간
발달장애 청년과 노년 부부를 만나며
글 : 송선미 / 스윗뮤직가든 대표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여행을 시작했다
나는 늘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나잇대 사람들을 만나왔다. 음악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자, 무거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였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되어 마음을 잔잔히 달래거나 요란하게 흔들기도 했다.
특히 노래 한 소절 속에 자기 존재를 담아내는 순간,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예술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주는 심리적 · 사회적 · 영적 동반자임을 느꼈다. 그래서 궁금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길어 올린 근본적 질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 답을 찾고자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노래 한 소절 속에 자기 존재를 담아내는 순간,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송선미
첫 번째 여정 : 발달장애인 청년들과 만났다
작년에 발달장애나 자폐성 장애가 있는 청년과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나를 바꾸는 시간(나·바·시)〉를 운영했다. 성인이 되며 겪는 불안을 예술로 누그러뜨리고자 기획했던, 그들이 느리지만 당당하게 한 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자립 프로젝트였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발달장애 아동 ‘어린왕자 합창단’과 출발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로 향하는 이들은 낯선 환경에 불안해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자립하자니 막막해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어려움이 아니라 사회 구조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문화예술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줄 수 있을까?”
예술 경험은 그저 여가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고 남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장이다. 참여자들은 작게 성취하며 자신을 긍정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해 나갔다. 하지만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으로 마주한 현장은 훨씬 무겁고 복합적이었다. 기존에 했던 장애 문화예술교육과는 차원이 달랐다. 첫 컨설팅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굳이 발달장애 청년을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가?”
순간 깨달았다,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한 예술체험이 아니라 삶의 전환기에 선 개인이 자신을 성찰하고 사회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획자에서 연구자로 시선을 바꾸었다. 프로그램을 바로 기획하자니 이들의 전환기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년이라는 시기가 자립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학문과 현장 연구가 병행되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문헌을 검토하고 선행연구를 분석하고 장애 가족과 활동 지원사를 인터뷰했다. 사전 시뮬레이션에서 참여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밀히 기록했다. 쌓이는 연구 결과들은 〈나를 바꾸는 시간〉의 새로운 근거가 되었다.
특히 부모와 활동 지원사의 목소리가 중요했다. 그들에게 자립은 취업이나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스스로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약을 챙겨 먹거나 때맞춰 씻는 일이나, 연애를 하거나 가족들과 잘 지내는 일처럼 생활의 기본을 다루면서 여기에 예술로 자신을 이해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당면한 자립 과제였다.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은 연구와 실천을 함께 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첫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환기 예술은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관계를 새롭게 맺게 하는 따뜻한 통로였다.

두 번째 여정 : 노년 부부를 만났다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은 “스스로 삶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이후 나는 노년 부부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들에겐 둘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고 의미를 재구성할 계기가 필요해 보였다. 내 부모님을 보며 깨달았다, 평생 같이 살았지만 정작 제대로 응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자녀와 생계를 위해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 끝에 은퇴 후 마주 앉아도 대화는 갈등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비단 우리 부모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결국엔 단절되고 고립되면서 예술과도 멀어졌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예술은 이들을 다시 이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응시(凝視)’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행위는 어색하고 낯설기 짝이 없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관계 회복을 위한 실마리가 있었다.
연구는 쉽지 않았다. 참여자를 모집할 때부터 큰 벽에 부딪혔고 오랜 습관처럼 등지고 살아온 부부에게 응시는 불편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이 연구를 단단히 지지해 주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지만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는 말, 간병하며 갈등하고 있어도 “그러려니” 하며 함께 살아내는 태도. 특히 여성 노인에게 예술은 자신을 회복하고 긴장을 풀어내는 중요한 길잡이였다.
사전 심층 인터뷰는 프로그램 방향을 재구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응시’를 주제로 예술을 하는 그들을 관찰하면서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밝혀내려 한다. 광주에 있는 노인복지관 실태조사와 현장 연구 결과도 분명했다. 노년에게 건강과 이동 문제는 절대적인 장벽이지만 예술 활동에 대한 기대와 참여 의지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노년 부부 관계는 ‘정서적 교류’, ‘공감’, 그리고 ‘과거의 회고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일’에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년 부부 여덟 쌍이 서로의 눈을 다시 마주하는 어색하고도 낯선 순간을 예술로 말랑말랑하게 풀어내고 싶다. 그리고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의 여정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응시할 수 있을까?”


서로를 바라보는 행위는 어색하고 낯설기 짝이 없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관계 회복을 위한 실마리가 있었다. ⓒ송선미
연구가 기획이 되는 순간
돌이켜보면 나의 여정은 늘 연구와 기획의 경계에 서 있었다. 발달장애 청년과 만날 때는 대상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전환기를 담아낼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문헌 검토, 심층 인터뷰, 행동 관찰을 거쳐서야 비로소 프로그램은 참여자의 현실과 맞닿았다. 그렇게 연구는 기획으로, 기획은 다시 연구로 되돌아오는 순환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노년 부부와 만나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프로그램 방향을 새롭게 다듬을 수 있었다. 〈노년, 노년을 응시하다〉 프로그램에서 참여관찰을 하면서 나는 ‘응시’라는 낯선 행위를 주제로 한 예술이 어떻게 둘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연구는 기획의 뿌리이자 출발점이었다.


〈노년, 노년을 응시하다〉 어벤져스팀 ⓒ송선미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의 순간이다. 연구는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게 하고 예술은 그 이해를 살아있는 경험으로 바꾼다. 발달장애 청년에게는 자기표현의 언어가, 노년 부부에게는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응시가, 그렇게 프로그램에서 현실이 된다.
내가 믿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는 단순한 활동 설계나 경험의 제공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연구가 삶을 비추고, 그 삶이 예술을 통해 다시 기획되는 순간에 있다. 연구는 곧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꺼이, 사람과 예술을 잇는 연구를 통해 길을 묻고 예술을 통해 답을 찾는다. 사람과 예술을 잇는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예술은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장은 늘 조용히,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