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호동' 작가와의 인물인터뷰 "아이들의 세상만 같아라">_박영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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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11-09 조회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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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인터뷰 이호동 작가 “아이들의 세상만 같아라”

 

박영수 통신원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굽이굽이 지도를 더듬어, 보물이 숨겨진 듯한 동굴에 다다랐다. ‘열려라 참깨!’를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우직한 대문도 있다. ‘열려라 참깨!’대신에 작가님의 성함을 외치니, 드르륵 동굴 문을 열고 작가님께서 나오셔서 손을 흔들며 맞아주신다.

  그곳은 이호동 작가님의 재미난 보물들이 탄생하는 작업공간이다. 여기저기 언뜻 봐도 평범함을 거부하는 작업도구들의 자태에, 자연스레 시선이 꽂힌다. 특히 작업실의 문지기를 자처하며 마당 한쪽을 지키고 서있는 녀석은, 유쾌하며 잔망스럽기까지 하다. 도화지 속에 갇혀있는 예술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작업실 주변이 모두 신선한 풍경이다.

  이내 노오랗고 아기자기한 어떤 작품 같은 것에 걸터앉아 주섬주섬 이야기를 꺼내신다. 이쯤 되니 신박한 작업도구들과 더 신박한 작품들 속에 담긴 비화가 궁금해진다. 다음 글에서는 작가님께서 필자에게 직접 이야기하시듯 풀어내보도록 하겠다. 그분의 이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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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의 자연에 풀어내는 이야기

  아, 마당에 있는 저거요? 작품명은 <야호>인데, 환경미술제에서 작업했던 것 중 하나예요. 이 녀석처럼, 제 작품은 대부분 인공적으로 색을 덧입히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을 이용하죠. 

 왜 하필 재료로 철을 사용하냐구요? 

 음, 예술가의 길을 걸어오며 얻어낸 연구의 결과라고나 할까요? 철을 이용하기 전에는 다른 재료들을 사용했었어요. 대학시절부터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틀을 벗어날 수 있을까?’였죠. 예술가가 틀 속에 갇혀버리면 결국 그 안에서만 사고하고 창조하게 되거든요. 


  그 질문의 답은 결국 ‘자연’ 이더군요. 인공적으로 무언가를 덧입히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요. 그래서 처음에 선택한 게 나뭇가지를 데포름하는 작업이었어요. 데포름은 대상의 특정 부분을 강조·왜곡해 변형시키는 표현기법을 말해요. 저는 그걸 나뭇가지에 적용한 거죠. 그 중에서도 감나무의 가지는 자라나는 모양새가 독특해서, 재미있는 포즈들을 만들 수 있어요. 거기에 최소한의 손질만 가미해서 몸의 포즈를 만들고, 다른 재료들로 얼굴만 조합시켜요. 솔방울이나 버려진 나무토막 같은 걸로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시장을 떠난 작품들은 하나같이 상하고 훼손되어버리는 거예요. 제 아들 같은 녀석들인데... 속상해서, 어디에 갖다 놓더라도 우직하게 버텨주는 재료를 고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지금에 와서 쓰게 된 재료들이 돌이나 철과 같은 것들이고요. 돌의 각기 다른 형태들이 사람 얼굴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철로 전체적인 포즈가 만들어지죠.


뱀이 도마를 먹으면 도마뱀이 된다고라?

  저를 닮아서인지, 제 작품들에는 언어유희나 말장난들이 많아요. 대학생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무거운 현대미술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언어유희라고. 


  교육대학원을 나온 후에는 본격적인 미술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어요.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작업한 <산 아래 산 이야기>, 대인예술시장에서 작업한 <춤추는 고래>와 같은 프로젝트들이 대표적 이구요. 

  이렇게 언어유희 관련 주제로 시각화, 입체화, 퍼포먼스 예술들을 하다 보니, 그림책도 하나 쓰게 됐어요. 롯데백화점에서 작가 그림책 전으로 전시한 <도마를 먹은 뱀>, <자는 사과>라는 작품이었죠. 대표적으로 <도마를 먹은 뱀> 같은 경우에는, ‘도마’와 ‘뱀’을 따로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스토리를 그림책으로 만든 거예요. 도마가 되고 싶은 뱀의 이야기이죠. “도마뱀의 되려면 뭘 해야 되지...? 일단 이것저것 삼켜보자!” 결심한 뱀이 해를 꿀꺽 삼키다가, 너무 뜨거워서 바다도 들이마셔 보는 거예요. 뱀 안에 해가 있고, 바다 풍경이 있는 모습이 재미있더라고요.

  올해에는 빈 창고를 아이들의 예술 창고로 만드는 작업, 그리고 시청을 놀이터로 만드는 작업들을 진행했어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아시겠다시피, 제 예술작품들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세상만 같아라!

  제 예술작품에는 투철한 철학정신이랄 건 사실 크게 없어요. 일단 예술을 하면서 스스로가 즐거워야 돼요. 규격화되어 딱딱한 어른들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저랑 맞지 않았어요. 언제나 무한 상상이 가능한, 틀이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꿈꿨죠. 아이들 그림을 접할수록 재미있고 놀라운 세상을 만나게 되거든요. 

  아이들의 세상을 표현하며 또 한 가지 느끼는 건, 어른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아이들의 세상을 간직하고 있다는 거죠. 분명 언젠가 자신도 지나왔던, 그리고 꿈꿔왔던, 그 세상을요. 저도 마찬가지이죠. 삶이 언제나 아이들의 세상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앉아있는 아시바라는 이 작업도구는 어른들의 세상에서나 작업도구이지,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재미난 자동차이고 신기한 놀이터거든요. 또 어른들만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에 달린 바퀴가, 아이들이 운전하는 재미난 시소로 바뀔 수도 있죠. 저는 그런 아이들의 세상을 현실로 불러내고 있어요. 오브제, 즉 다양한 물건들을 이용해 하나의 특정한 물체 모양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말이죠.

  제가 불러낸 세상들이 단순히 예술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은 시장에서, 아이들이 놀 곳이 어디가 있을까요. 대인예술시장의 <춤추는 고래>는 그런 아이들의 약속장소가 되어주고 놀이터가 되어주는 공간이에요. 아이들의 세상을, 그들의 행복을 없애서는 안돼요.   
 
  최근에는 아트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멍텅구리 통통통>이예요. 얘는 무엇이든 빨리 변하고 어디든 빨리 가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멍텅구리죠. 하지만 느리게 가고 느리게 생각하는 멍텅구리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 녀석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또 10월 29일 풍향어린이공원에서 선보였던 <아뜨르릉>에서는, 움직이는 예술학교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어른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아이들의 세상이 스마트폰 게임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기획하게 되었죠.


  음,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계획일까요, 저는 학교의 공간을 바꿔볼 수 있었으면 해요. 학교에 아이들이 좋아할 재미있는 놀이터를 만들어보고도 싶고요. 그림책 작업도 계속하고 싶어요. 물론 종이에 그리는 그림책이 아닌 일상의 어느 공간에 떡하니 펼쳐지는 거대한 그림책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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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끼워 맞춰서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모두 아이들의 세상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의 세상을 되찾아오는 과정은 사실 제 자신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구요. 아시바가 자기의 역할을 내려놓으면 물고기도 되고 쉼터도 돼요. 자동차 바퀴가 자기의 역할을 내려놓으면 시소가 될 수도 있죠. 마찬가지로 언젠가 저도 스스로를 온전히 내려놓는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마주하는 사물들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었니? 그 안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니?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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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이야기한다. “요즘 애들은 죄다 이상해. 어른공경은 무슨, 걸핏하면 대들기나 하고 말이야.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글쎄, 사실 ‘요즘 아이들’이 이상해진 건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유전자 변형 식품만 섭취한 것도 아니고, 겨우 몇 십 년 사이에 유전자 품질이 변해봤자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단지 이상해진 건 현재의 ‘아이들의 세상’이다. 놀이를 배워야 할 시기의 아이들은 경쟁을 배우고,  가족의 품 안에서 마음껏 뛰놀아야할 때에 아이들은 사교육 한가운데에서 방황한다. 아이들의 세상을 앗아간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세상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다른 또래아이들과 놀이로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고 느끼며 더 깊은 따뜻함을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호동 작가님이 표현해내는 아이들의 세상은 언제나 한결같다. 재미있고 신나는 곳, 행복을 주는 곳, 그 이상의 어떤 목적도 없다.  
 


그러하다. 정말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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