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까지 디자인하는 나만의 악기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딩딩뮤직 서킷보드
박영수 통신원
작가님이 가리키는 화면 안에는 리코더처럼 생긴 길쭉한 악기가 있었다. 아니 그런데, 입구도 없고 간신히 구멍 몇 개만 가지고 있는 이 녀석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해 하던 아이들은 곧이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와, 예상치 못한 소리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나온다. 리코더 운지를 바꿀 때마다 악기소리가 아닌 작가님의 목소리가 나온다. 리코더의 각 운지마다 해당 음계에 맞는 육성을 입혀, 터치할 때마다 그 소리가 나도록 설정해놓은 것이다.
화면을 넘기자 또다른 악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타 같이 생겼는데, 역시 평범한 자태는 아니다. 실제로는 기타코드를 잡을 줄도 모른다던 작가님이 드르륵, 기타줄을 긁으니 예쁜 기타소리가 풍성하게 울려퍼진다. 코드소리들을 각각 버튼으로 저장해놓고 간단히 터치만 하면, 해당 버튼에 저장된 소리를 기타줄에서 낼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레고, 바나나, 물, 심지어는 신체부위까지, 전기가 통하는 물체라면 무엇이든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랄 수밖에. 디지털 악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인지, 오늘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는 확실히 증명한 셈이 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 내의 라이브러리파크에서 진행된 오늘 수업은, ‘청소년 창작체험 프로그램’중 하나인 ‘딩딩뮤직 서킷보드’시간이다. 딩딩뮤직 서킷보드는, 위에서 등장했던 리코더나 기타처럼, 좋아하는 소리를 녹음해 자신만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연주할 수 있는 키트 악기이다. ‘딩딩이’라는 작가님네 고양이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하니, 더 친근하고 귀엽게 들린다.
0번부터 35번까지 총 36개의 버튼이 있고, 기본 세팅은 피아노 소리로 되어있는데 원하면 언제든지 mp3파일을 넣어 바꿀 수 있다. 이제 아이들이 할 일은, 앙상한 키트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아니, 키트와 연결만 되어있다면 키트 ‘위’ 뿐 아니라 좌우, 아래, 3D입체, 어떻게 꾸며도 상관없다.
2시간 여 서킷보드 디자인 작업의 시작은, 놀라지 마시라, ‘납땜’ 작업이다. 이 흥미 가득한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 아이들은 전선을 서킷보드와 연결하는 대관문(?)을 거쳐야 한다. 사실 미리 납땜이 되어 있는 서킷보드를 가져와서 수업해도 되었다. 하지만 학교 밖의 다양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은 작가님은, 손수 납땜 작업을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물론 자칫 위험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작업이기에 작가님 및 보조 스태프들과 납땜과정을 함께한다. 낯선 인두기가 만들어내는 연기에,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이어서 각 버튼마다 형형색색의 덮개를 씌우고, 전선, 필름, 종이, 수수깡 등의 다양한 재료로 옷을 입힌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입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악기의 연주방법을 다양하게 고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전기가 통하는 물체를 연결시키면, 색다르고 재미있는 연주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각종 재료들을 열심히 이어붙이고 있는 아이들의 집중력이 엄청나다. 표정만 봐도 아이들이 이 순간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친구가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찌나 예쁘게 집중하는지. 옆에서 잠시 지켜보다, 설문지를 작성할 때 조심스레 다가가 물어보았다.
Q. 서킷보드 꾸미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어떻게 오늘 수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A. 누나랑 같이 왔는데, 나만의 악기를 만드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참여해보게 됐어요. -박지환 (동신중 1)
Q. 누나랑 같이 왔구나. 직접 만들어 보니 어때요?
A. 일단 처음에는 신기하고 어려워보여서 못할 것 같았는데, 선생님들이 잘 도와주셔서 재밌게 하고 있어요.
아마 피아노의 건반처럼 만들어 보려는 듯, 키트 위 아래로 필름들을 길게 이어붙인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또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졌을까,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재미있게 필름들을 오려붙여 만든 작품, 기타처럼 줄을 연결해 만든 작품, 계이름을 적어 디테일한 연주를 기대해볼만한 작품 등등, 탐나는 아이디어들이 많다. 어떤 모양으로 재탄생했든 그간의 귀한 노력들이 오롯이 담겨있을 터. ‘와, 재미있다! 수고했어.’ 작품들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칭찬해주는 작가님의 멘트에 아이들도 뿌듯한 미소로 화답한다.
‘리틀보이사이언’이라는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유상준 작가님은, 입시와 학교 성적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학교 밖 새로운 걸 배우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이에 그들에게 여유와 활력을 주고 창의력을 발달시켜주는 장난감을 수없이 고민했으며, 그 결과물로써 딩딩뮤직 서킷보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 수업과 같은 메이커 무브먼트, 즉 창조적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더욱 활발해지면 한국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작가님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안에서 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수업에서 만든 악기들은 집에 가져가서 나만의 소리를 덧입히면 완성된다. 나만의 소리를 만들기가 어렵다면 어느 정도의 샘플을 제공해주시기도 한다. 음악으로 아이들의 삶에 여유와 활력이 번지기를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이 반영된 듯, 처음의 어색했던 침묵이 화기애애한 재잘거림으로 바뀌었다. 활짝 갠 하늘처럼 미소 짓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