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호] 굳어버린 세상에 처방하고 싶은 유연제 - 김수빈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0-08-03 조회수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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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예술교육연구소 서로배움

굳어버린 세상에 처방하고 싶은 유연제

창의예술교육연구소 '서로배움' <다음을 위한 닿음>

 

김수빈 통신원

 


 꽤 진지한 사람들의 모임, 아니 아주 진지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취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주 진지한 사람들의 모임’이 될 것이다. 월요일의 아침, 계속되는 장마전선으로 우중충한 오전이었다. 보내준 주소의 도착지는 공교롭게도 꽤 눈에 익숙한 곳이었다. 언젠가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었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 오다가다 꽤 많이 봐온 곳이었다.

 

 사실 맨션 바로 옆쪽에 위치한 대문짝만한 글씨의 빈티지스러운 비뇨기과에 시선을 빼앗긴 채 걷다 보면 나오는 집이다. 일반 주택이겠거니 싶지만, 두세 번 볼 때야 사람이 사는 주택이 아님을 알게 하는 그런 곳. 그 뒤 그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저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취재의 장소라니.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을 가지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본 건물의 외관도 꽤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맨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속으로 꽤 바랐던 분위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왜인지 노다지를 발견한 것만 같은 느낌. 무드와 감성에 꽤 큰 중요성을 두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분위기였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일까, 뒤이어 뭔가 범상치 않은 능력이 하나씩 있을 것만 같은 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번 취재 대상인 연구모임의 연구진들이었다.

 

 

▲ 아이디어 기획회의를 시작하는 연구진들의 모습 

 

 

 ‘다음을 위한 닿음.’ 다음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닿음이 있어야 한다는 포스트코로나의 시대적 요소가 가미되어진 의미이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 4인으로 구성된 다음을 위한 닿음 연구모임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매개체로 하여금 문화예술 교육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실질의 결과물을 만들고자 총 10회 차에 걸친 연구모임을 갖는다. 이 과정을 통하여 각자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피드백을 받고 보완하여 문화예술교육의 아웃풋을 생산해낼 예정이다. 총 10회 차의 걸친 만남 중 3번째의 만남에 초대된 나는 생각 이상으로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그들은 ‘연구모임’이라는 본질에 맡게 정말로 진지한 연구자들의 모습이었다. 아직 모임의 초입새인 3회 차는 각자가 생각해온 테마에 여러 아이디어를 던져가며 이런저런 형태의 윤곽을 찾아가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과정이었다. 첫 번째로 운을 뗀 양지선생님은 시각적인 드로잉 요소를 필두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감각을 통하여 문화예술과 접목하고자 했다. 특히나 감정의 환기가 중요한 언택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나를 더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진(Zine)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다.

 

 

드로잉 작업 중인 양지 연구진

미국에 있을 당시 양지 선생님의 진 작품1

미국에 있을 당시 양지 선생님의 진 작품2

 

 

 진이란 잡지를 뜻하는 말로, 흔히들 잡지로 알고 있는 매거진(Magazine) 보다 작은 사이즈의 잡지를 말한다. 이어 그녀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반인들이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진 만들기에 접근할 수 있을지에 고민하며 함께하는 연구진들의 아낌없는 피드백을 수용하며 열띤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아이디어를 들은 팀원들은 그에 관련하여 보고 느낀 아이템들을 서칭하여 양지선생님에게 피드백하며 방법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역량에 대하여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양지선생님이 만든 진을 나에게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가 미국에 있을 당시 만들었던 진은 생각 이상으로 예술적이고 감각적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이미 서로를 잘 아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연장되었다.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서로의 빈틈은 채워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가는 분위기예요. 단계 중 3회 차에 접어든 지금은 이타심과 협동심의 단계인 것 같고요.”

양지선생님은 3회 차에 접어든 팀원들과의 합에 대하여 말하였다.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타심을 발휘한 팀워크가 연구모임에 모인 이들이 가진 진면모인 것 같았다. 그러한 태도의 기저에는 문화예술 교육의 실천이라는 뚜렷한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이라는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두 번째로 아이디어를 낸 김정우 선생님은 가드닝(Gardening)을 접목한 달력 만들기에 관하여 말하였다. 개개인의 경험재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기르고 가꾸어야만 하는 가드닝을 접목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창출해내고자 한 것이다. 정우선생님이 고려한 아이디어 또한 그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는 머릿속이 답답하고 복잡할 때 자연을 공부하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을뿐더러 자연스럽게 감정의 해소가 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가 직접 체득한 것들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과 접목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코로나19였다. 가드닝이란 기본적으로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기에 지금과 같은 시기에 초행자들에겐 다소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는 점을 아쉬워하며 그로부터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파생점들을 함께 모색하였다. 또한, 팀원들은 정우 선생님에게 아낌없는 피드백을 주며 그에게 있는 포텐셜을 끌어내고자 이야기를 유도해 나갔다. 그들은 아이디어의 기반이 ‘정우에게서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를 향한 응원의 말도 덧붙였다. 또한, 이러한 과정 중 그들은 문화예술 교육의 접근성에 관하여 ‘제공자 중심의 생각이 아니라 수용자 중심의 생각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며 취재를 하는 나에게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연구모임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그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는 마치 철학자와도 같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고심하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이에 김율하 선생님은 개를 위한 전시를 예시로 들면서 인간 중심적이었던 전시 형태가 코로나시대로 인하여 위기를 맞으며, 인간 중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이 키우는 애견들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진 전시라는 소개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개를 위한 전시이기에 일련의 과정이 인간에겐 불편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인간중심적이었던 세상으로부터 온 질병인 코로나 시대에 관한 역설이 담겨 있다는 말과 함께 인간의 시선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전시가 있는 시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 또 다른(자연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고를 가지고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힘일 수도 있다며 문화예술의 필요성에 대하여 비유 표현하였다. 그녀의 조곤조곤한 말투에는 진심과 호소력이 있었기에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디어 기획회의에 집중하는 연구진들의 모습

 

 

 그들의 열정적인 토론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에 임박해 있었다. 공식적인 스케줄 시간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박하나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펼쳐졌다. 하나 선생님은 모임 장소의 사장님이기도 했다. 왜인지 그녀에게서는 사장님 같은 포스가 느껴졌는데, 취재가 끝난 후에는 맨션 위층에 있는 입주 작가(양지, 율하, 정우 선생님이 입주 작가로서 활동 중이다.)님들의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맨션의 위층은 입주 작가의 작업공간이다

맨션의 사장님이자 연구진인 하나 선생님의 작업 공간


 
 그녀는 자신의 주특기인 요리와 철학을 접목하고자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철학자들의 식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라갈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식탁에 차려진 한 상이란 수저부터 음식까지 모두 자신의 기호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기에 개인의 기호성을 알아갈 수 있는 음식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학문인 철학이라는 키워드를 엮어 그로부터 파생된 자신의 기호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고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게 취지라고 말하였다. 또한 하나 선생님은 윤곽을 잡아가는 아이디어 회의 과정 중 자신의 아이템이 문화예술과 접목시키기에 합당한 지에 관한 의구심과 고민을 하며 함께하는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받고자 했다. 이에 함께 참여하는 연구진들은 언택트 시대에서 그녀의 아이템을 바탕으로 더 효과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할 수 있도록 상황대처 매뉴얼 등이 첨부되어있는 책으로 만드는 것 또한 괜찮은 아이디어라며 부가적인 살을 덧붙여주기도 했다.

 

 이어 시간에 쫓기듯 마지막 주자인 김율하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관해 피드백을 받고자 했다. 그녀가 구상해온 아이템은 바로 아동을 위한 동화책이었다. 동화의 소재 자체는 이미 대두되고 있지만, 더욱더 깨우쳐야 하는 각자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존중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연령대 또한 양분의 흡수율이 가장 높은 아이들로 정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함께하는 이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이 구상해온 아이디어를 진행함에 있어서 부족한 틈을 메웠고, 또 동화를 만들고자 함에 있어 대상은 아동이나, 실제 구매자들은 성인인 점을 고려하여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의 아이디어를 들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현 청년의 세대보다도 깨어있는 사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마지막 율하 선생님의 아이디어 피드백까지 끝마치자 그들은 오늘도 모자란 시간이었다는 말과 함께 기획회의를 마무리 짓는 듯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연구모임의 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2시간이 흘러갔음에도 그들의 엉덩이는 무거워 보였다. 아직 한참은 모자라 보이는 듯한 2시간의 여운에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비우지 않은 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가뜩 진지함이 곧 불편함으로 인식되는 젊은이들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생각들을  대상으로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가치 있는 일인 지에 관하여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내가 느낀 그들은 무척이나 진지하지만 부드러운 사람들이었고, 견고하고 단단하지만 세밀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 연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절규>는 총 4점의 연작 중 하나일 뿐이다. <절규>라는 하나의 그림을 누구나 다 알기까지 그의 그림에는 여러 디테일한 요소가 더해졌고, 그에 따라 몰입하고 또 몰입했을 것이며 다양한 기법의 시도로 고심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표현해낸 디테일과 그에 따른 몰입이라야 비로소 고통의 정수를 담아낸 명작이라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뭉크의 절규에 일렁이는 4개의 하늘이 있듯, 그들에게도 세심하고 진지하게 흘러가는 그들만의 일렁이는 여러 하늘이 있다. 이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의 부드러운 결이 살아난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겐 진지한 대화거리가 되고, 끊임없는 연구거리가 된다. 이들의 치열한 만남으로 아이들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며, 현대 사회 속 나를 잃어버린 누군가는 보다 더 나은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문화예술교육이 가지고 있는 힘이기에. ​

 

 

 

 

 

  

김수빈 (11기 통신원)

초시대. 1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데서 파생된 단어 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엔 무엇이 있길래 이리도 숨 가삐 뛰어만 가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쉬어감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쉬어감의 다른 말을 곧문화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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