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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청년들이 5·18을 기억하는 방법
오월의 이야기하는 청년들의 느슨한 연대 모임 #MAYBE
통신원 이하영
매년 9월이 다가오면 미국 전역에서 시민들과 소방대원들이 모여 함께 110층의 계단을 오른다. ‘9·11 Memorial stair climb(911계단 오르기)’로 불리는 이 행사는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9·11테러를 기억하고 당시 순직한 343명의 소방대원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됐다.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높이와 같은 110층의 계단을 한 걸음 한걸음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도 비극적 사건에 애도를 표할 수 있구나’ 놀라워 했던 기억이 난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광주 역시 매년 5월이 다가오면 5·18 민중 항쟁을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관련 기관과 대학에서는 학술대회가 열리고, 학생들은 전남도청과 국립묘지로 역사 탐방을 떠난다. 518과 관련 영화가 상영되고 음악회가 열린다. 5·18 정신을 기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광주의 청년들 역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5·18을 기억하고 있다.
▲오월의 안부편지 ▲오월길 페스티벌
수레를 끌고 오월길을 돌며 퍼포먼스를 하고, 일상에서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기 위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오르골에 담는다. 엽서를 통해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기리고, 라디오를 들으며 오월길을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처럼 광주의 오월에 대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모여 함께 오월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느슨한 연대 모임이 있다. 달콤한 오월길 MOVING 콘서트를 기획했던 오월문화기획단 달_Comm, May of Gwangju 오르골을 제작한 그라제, 오월의 안부 편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왕꽃, 오월길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했던 유별라, 크리에이터 그룹 데블스 TV, 오월길 스마트앤티어링을 진행한 참한 창작소, 오월창작가요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기획자 김한열씨와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유경남 큐레이터로 이뤄진#MAYBE(메이비)다.
▲달_Comm 김꽃비 청년과의 인터뷰 장면
지난 2018년 4월 처음 만난 이들은 매월 한 차례씩 서로의 프로젝트 소식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소소하지만 느슨한 연대를 통해 청년들 자신의 텍스트로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고 있다. 처음 만남을 제의한 오월문화기획단 달_Comm의 김꽃비 씨는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일단 만나보자 해서 만났는데 다들 비슷한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청년들이 뭘 아느냐’, ‘5·18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와 같은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나누면서 우리끼리 속상해하고 끝내기보다 정기적인 연대와 모임을 통해 청년들도 5월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음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만의 텍스트’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레를 끌고 오월길을 도는 퍼포먼스를 두고 5·18은 경건히 추모해야 할 일이지 희화화해선 안 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청년들은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5월을 외면하고 이야기하길 꺼리는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가 감히 어떻게 오월에 대해 이야기해?’ ‘사건을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닌데’라는 걱정과 함께 청년들을 5·18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오월에 대한 기억이 이어지기 위해서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 기억하고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건을 정확히 알기 위해 관련 자료와 논문 등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달_Comm, 오월수레 오늘을 걷는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청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학생들과 함께 퍼포먼스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선생님, 퍼포먼스를 통해 평소 그냥 지나쳤던 오월 사적을 보며 ‘이곳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처음 알게 됐다’고 말씀해 주시는 시민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청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언어로 오월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MAYBE(메이비)는 더 많은 청년과 함께 오월을 이야기하기 위해 오픈 콘서트 등을 기획하고 있다. 올바른 추모 방법을 논하기 전에 사건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함을 보여 주고 더욱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기억에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 스스로 선택한 언어와 방식으로 기억에 동참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아픔을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기록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기록물과 증거가 보여 주는 객관적 사실은 사람들의 편견과 ‘이제 지겹다, 그만 이야기하자’는 말 앞에서 힘을 잃는다. 김꽃비 청년의 말대로 시간이 흐르면 5·18은 결국 사건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 의해 기억된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과 5·18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청년들을 함께 응원했으면 한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