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아뜨르릉]5월_기획연재 (2).jpg [size : 423.9 KB] [다운로드 : 0]

그림책 톺아보기 - ②
친구가 되어, 오래오래 느낌 가득한 삶을 살았답니다.
최서영 / 그림책 작가
나를 만났기 때문에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고, 작업실을 정리했다. 곧장,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던 시골의 빈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런 이유로 낡고 오래된 집이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나 새 옷을 입었다. 그러나 이 집은 옛 주인을 놓지 못하겠나 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90년이 넘는 세월이 깃들어있는 흔적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들을 만져 볼 수 없다는 아슴푸레한 마음에 마당에서 가슴을 쓸어내려 보지만, 자꾸만 호젓하다 못해 순식간에 쓸쓸해져 버린다. 그러다 문득 가정이라는 말이 떠올라 새삼 소름이 돋았다. 가정에서 정(庭)은 마당, 뜰, 집안의 빈터를 뜻한다. 마당은 집이라는 건물과 분리되어 이웃과 공동생활을 해왔던 사회적인 공간이다. 그 정(庭)의 공간인 마당에서 잊고 지냈던 오랜 시절 미운 정(情), 고운 정들이 떠올라 새 옷을 입은 할아버지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난 이 마당에 서면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할머니와 침을 튀기며 싸우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날카로운 소리는 기어이 못이 되어 서럽게 두려워했던 아이 같은 아빠의 모습이 내 가슴에 박힌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 많은 할아버지와 할 말 다 하는 할머니가 참 미웠다. 그 과정에서 주변 이웃과 친인척들이 마당에 오갔다. 어린 마음에 나를 구경하는 이웃의 시선이 쑥스러웠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부끄러워서 보란 듯이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 그 마당에 서 있다. 나는 어떤 어른인가 생각하니, 그동안 나의 마당에서 함께 했던 아이들에게 퍽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던 시골의 빈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낡고 오래된 집이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나 새옷을 입었다. ⓒ최서영
3년 전, 그림책 작가가 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자, 언제나 친절할 것이라 기대하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오갈 곳이 없어 고개를 숙인 양육자와 아이들을 마주하니, 그들의 마당에 이웃이 되어 유난스러운 손길로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스승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마당에 매일매일 잔치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작업실에서 내내 발을 동동거렸다. 골똘히 무엇인가를 자르고 붙이고 택배를 뜯으며 아이들의 변화와 발전을 증명하려 애썼다. 양육자들은 그럴듯한 결과물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있었다.
친구가 되었습니다.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에서 주인공 레이먼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형이 레이먼의 어설픈 그림을 보고 비웃는다. 그날 이후, 레이먼은 그럴싸하게 ‘똑같이’ 그려보려고 애를 썼다. 레이먼의 표정은 사라지고 구겨진 종이만이 주변에 널브러졌다. 급기야 그림을 그리던 연필을 내려놓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안 해!” 아이들이 나에게 레이먼처럼 굳은 표정으로 선언했다. “저는 못 해요.” “선생님, 저는 책을 싫어해요.”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없어요.” 심장이 내려앉는 말을 듣고서야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낙서 같은 글자와 그림을 보고, 그들의 양육자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한심하게 나와 아이들을 바라볼까 무서웠다. 그럴싸해 보이도록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을 자꾸 앉게 하였고, 스무고개보다 더 많은 고개를 넘어 끊임없이 정답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잘 그려진 그림을 최대한 똑같이 그릴 수 있게 가르쳤다. 그 노력으로 낙서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그럴듯해 보이는 명화 같은 삶이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대단한 스승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지지가 없는 욕심은 속이 텅 빈 유리공이 되었다. 그 유리공이 깨어질까 나는 잔뜩 힘을 주느라, 내 곁에서 힘을 잃은 아이들의 손과 처진 입술을 미처 보지 못했다. 쥐고 있는 유리공을 깨지도록 내버려 두어서야 예술의 본래 목적인 자기표현을 잃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채우는 학습공간이 되어버린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말투로 아이들의 그림을 부끄러워하는 레이먼의 형 같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레이먼에게 다시 연필을 쥘 힘을 준 것은 그의 여동생 마리솔이다. 그녀는 레이먼이 버린 구겨진 그림들을 펼쳐 테이프로 엉성하게 자신의 방 벽에 붙여두었다. 마리솔은 그 아수룩한 그림을 가리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야.” “화분 느낌이 나잖아!”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한다. 레이먼은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느끼는 대로 쓱쓱 그려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낌대로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그릴 수 있었다. 자신의 느낌을 누군가에게 증명하거나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레이먼은 자유로웠다. 그래서 눈을 감고도 무엇이든 쓱쓱 그릴 수 있었다. 나는 마리솔을 보며 뼈가 저리도록 깨달았다. 문화예술교육은 연필을 쥐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연필로 무엇을 하든 편들어주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되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바꾸려 들지 않고, 그냥 옆에서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그 우정이 가득한 마당이 문화예술교육의 정(庭)이다.

『느끼는 대로』(피터 레이놀즈, 문학동네, 2004) ⓒ최서영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마당은 방법에 대한 정답을 찾는 공간이 아니라 질문이 있는 마당이다. 노답인 질문에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우정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문화예술교육자는 전달자나 전수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친구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느낀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같은 문화예술교육이 많아진다면, 우정의 힘으로 모두가 각자 주어진 삶을 꽉 쥐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문화예술교육이 다양한 사람들의 마당을 향해 초인종을 누르자. 그리고 목청껏 불러보자. “같이 놀자아아아아아.!”
그날 이후, 나는 스승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왼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 함께 쓰고, 그리며,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일부러 못난 사람이 되어 실컷 놀림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우리 사이에 언제 금이 있었냐는 듯 재잘거리기 시작했고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이들은 더는 내가 준비해둔 것을 따라가느라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바쁘다. 친구가 된 이후로 나를 끌고 자신이 차린 상과 마당을 보여주려 분주해졌다. 내 곁에 바투로 달라붙어 속삭이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정(情)의 마당에서 친구끼리 나누지 못할 것이 없다. 비밀을 나눈 우리는 서로 눈을 감고도 무슨 느낌으로 쓰고, 그렸는지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글이나 그림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느낌이었지요
눈을 감고 그림을 실컷 그려대는 레이먼의 하루하루를 그림책 속에서 한장 한장 넘기며, 그의 과거가 두꺼워질수록 난 그 아이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아마도, 그림책 끝에 레이먼은 분명 멋진 현대미술가가 되어 성황리에 전시회를 하지 않을까. 흐뭇한 마음에 두 눈을 더욱 말똥하게 떴다. 그런데, 레이먼은 다시 연필과 스케치북을 내려놓았다.
어느 봄날 아침,
레이먼은 아주 굉장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레이먼은 붙잡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그 느낌을 마음껏 즐겼어요.
-그림책 일부-

『느끼는 대로』친구 같은 문화예술교육이 많아진다면, 우정의 힘으로 모두가 각자 주어진 삶을 꽉 쥐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최서영
나는 아직도 멀었다. 90년이 넘는 옛 주인을 잊지 못해 여기저기 퀴퀴한 냄새를 껴안는 이 집처럼, 나도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습관을 쉽사리 떨쳐낼 수 없나 보다. 눈을 감고 연필과 종이를 내려놓은 레이먼이 말한다. 문화예술교육의 최종목표는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을 그냥 만끽해보는 것이다. 나는 레이먼에게 “난 느끼기만 하는 삶은 좀 불안해. 유명한 그림책작가가 될 수 있으면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싶어.”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머쓱한 미소를 지어본다. 다만, 나는 앞으로 영영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친구가 되어, 되도록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오래오래 느낌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 그림책 를 곁에 두고, 오래 두고, 자주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