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뜨르릉] 느리게, 깊게, 함께 : 생태예술가로 산다는 것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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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깊게, 함께 : 생태예술가로 산다는 것

자연과 사람을 잇는 예술의 힘을 믿는 두 사람이 담양 수북에서 만났다

글 : 김수옥 / 서양화가




오랫동안 ‘북구문화의집’에서 ‘바퀴달린학교’ 〈땅과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예술가 박문종 작가와 장성에 귀향하여 십여 년간 아이들과 〈꼬마마녀 앤과 바람의 아이들〉이라는 생태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해 온 김수옥 작가가 만났다. ‘예술가’, ‘교육자’, 그리고 ‘생태적 존재’로서 살아가며 아이들과 자연을 매개로 예술교육을 실험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아이들과 흙을 만지며 계절을 배우고 숲과 물소리 속에서 예술의 숨결을 듣는 사람들. 생태예술가 박문종과 김수옥은 각기 담양 수북면과 장성 동화면에서 오랫동안 자연과 아이들을 매개로 예술을 실험해왔습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질문을 품고 살아온 두 예술가가 예술가, 교육자, 그리고 생태적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일정한 틀도 완성된 정답도 없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 속 예술이 품은 가능성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새로운 삶터에서 다시 발견한 자연과 예술


수옥 : 천연염색을 시작하면서 마당 있는 집이 꼭 필요했어요. 자연스럽게 태어난 곳, 어린 시절에 예술 감수성이 자라났던 장성 시골집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됐죠. 그렇게 문화예술사업을 하면서 생태와 예술이 만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박문종 작가님의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 작품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오랜 시간 쌓은 감각이 그대로 느껴져서 문득 궁금했습니다. 언제 자연과 처음 깊이 연결되었을까,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요. 담양에 작업실을 마련한 특별한 계기나 배경도 있을 것 같고, 여기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 듣고 싶어요.


문종 : 젊은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고 삶의 3분의 2는 도시에서 나머지는 농촌에서 지냈습니다. 광주라는 도시는 특히 1980년대를 지나며 큰 영향을 줬어요. 도시에서 작업하면서 자연이나 농촌을 그리는 데 거리감이 느껴져서 그곳에 머물며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1997년, IMF 직전에 담양으로 오게 됐죠.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었지만 시기가 좋았어요. 아이 태어나기 직전이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작업을 위해 여길 선택했고 조금씩 감각이 열리면서 광주 화실에서는 풀리지 않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죠.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며 '내 그림은 뭘까'라는 고민 끝에, 흙을 한지에 바르고 색을 스며들게 하는 실험을 시작했어요. 당시엔 생소한 방식이었지만 굉장히 원초적인 감각이었죠. 우연히 담양에 왔다가 분위기에 끌려 정착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지점을 찾았죠.


처음부터 작업을 위해 여길 선택했고 조금씩 감각이 열리면서 광주 화실에서는 풀리지 않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죠. ⓒ청춘기획라이브온


수옥 : 예전에 직접 모내기했다고 들었어요. 논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진짜 농사일을 예술 프로젝트로 했죠. 저도 어릴 때 모내기해봤는데, 거머리 붙고 진흙에 빠지고… 기억에 쏙 남더라고요. 그걸 예술로 연결했다니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논을 그리는 걸 넘어서 아예 논이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갔잖아요. 행위예술처럼 보였어요.


문종 : 맞아요. 2001년부터 삼 년 동안 논에서 모내기 퍼포먼스를 했어요. 지역 주민한테 논을 빌리고 친구들이랑 같이 모를 심었죠. 퍼포먼스처럼요. 우리는 모내기만 하는 조건으로 논을 빌렸고 주민분들이 수확했어요. 진짜 쉽지 않았어요, 몸으로 해보니까. 이게 그냥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일이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나서지 않으면 한 사람 논도 못 심었거든요. 그런 구조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논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가니 그곳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노동과 관계가 얽힌 장소로 보이더라고요. 직접 몸으로 겪고, 과정을 작품처럼 펼쳐 보이고 싶었어요. 그림에 다 담을 수 없던 것들을 퍼포먼스로 해본 거죠. 물론 돈도 들고, 계속 이어가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림 속 논이 아니라, 살아있는 논을 예술로 경험했어요.


그림 속 논이 아니라, 살아있는 논을 예술로 경험했어요. ⓒ청춘기획라이브온


아이들에게 생태 감수성을 키운다는 것


수옥 : 문화예술교육 쪽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의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걸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는데요. 자연과 가까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니 일부러 돕지 않으면 아이들이 자연을 몸으로 느끼기 쉽지 않더라고요. 작가님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을 새롭게 마주하는 과정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런 작업이 아이과 어른 모두에게 자연을 다르게 바라보는 감각, 즉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종 : 그렇죠. 정확히 말하면, 프로그램이 ‘관문’ 역할을 해요. 사람들이 자연을 진짜 경험하게 만드는 계기 같은 거죠. 그냥 자연을 보러 가도, 밥 먹고 “풍경 좋네” 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프로그램 안에서는 다르게 자연을 만나죠. 쉽지 않지만 반복해서 경험하게 하고, 교육자들도 계속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결과가 바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논에 들어가서 진흙에 발 담그기가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발끝으로 느껴지는 미끈한 촉감,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느낌 자체가 감수성을 자극하는 거예요. 그렇게 겪지 않으면 자연은 그냥 배경처럼 지나 가버리니까요. 그런 접촉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다고 봅니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미끈한 촉감,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느낌 자체가 감수성을 자극하는 거예요. ⓒ청춘기획라이브온


수옥 : ‘타샤 튜더’라는 미국 동화작가를 참 좋아해요. 시골에서 혼자 정원 가꾸고 뭐든 손수 만들며 자연이랑 함께 살았거든요. 그런 삶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나이 들면 저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에서 그렇게 사는 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자연이랑 가까이 지내는 게 저한텐 여전히 중요해요. 요즘은 ‘어반 스케치’에 빠졌어요. 밖에서 짧은 시간 안에 풍경을 그려요. 그냥 사진 찍는 것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자연을 보게 돼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타샤’처럼 자연이 스며든 예술가가 되어가는 기분이랄까요. 자연 속에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으세요.


문종 : 뭔가 거창한 예술가보다는, 자연이랑 조용히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처음엔 먹그림으로 시작했는데 선생님들은 먹을 맑게 써야 한다고 했어요. 내겐 잘 안 맞더라고요. 일부러 거칠게 쓰고 종이도 도구도 다르게 써봤죠. 주변에서 많이 반대했어요. 근데 자연도 완벽하게 정돈된 게 아니라 좀 흐트러지고 거친 부분이 있잖아요. 자연의 결을 그대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종이를 구겨서 쓰거나 두꺼운 종이 뒷면을 벗겨서 쓴 적도 있는데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남들이 보기엔 형식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자연에 더 가까이 가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시골 풍경이나 농경을 가지고 작업했는데, 근대 이후엔 거의 다루지 않은 주제거든요. 그래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나 어른도 자연과 예술을 새롭게 연결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봤어요. 결국 자연을 배경으로 두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연과 부대끼고 그 안에서 실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이고 싶어요.”



꾸준히 즐기면서 오래하며 자연스레 연결되는 관계의 힘


수옥 : 아이들이 자연을 만나고 느끼는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요. 같이 흙을 가지고 놀면서 수업이 자연스레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자연을 창작의 재료로만 보다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관계가 되고 보니 예술이 더 겸손해지고 자연과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과 자연에서 함께하면서 예술적으로 깊이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작업 방향을 크게 바꾼 적이 있는지요.


문종 : 아이들이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도 수업은 성공이에요. 완벽할 필요 없고, 특히 초등학생은 좋아하는 걸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중고등학생 되면 입시 때문에 감성이 많이 사라져서 아쉬워요. 그래서 애들이 좋아하는 걸 하게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면 부담되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오래 하는 게 좋아요. 책 보는 것도 좋지만 경험이 훨씬 중요하거든요. 스트레스받지 말고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 되고요.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게 가장 오래가요.


2012년부터 〈땅과 예술〉을 아이들이랑 해왔어요.〈그림 농사〉라고도 하는데, 아이들이 모내기하고 노래 부르고 사진도 찍으면서 좋아했어요. 농촌 빈 공간이나 황토 더미 같은 것도 예술적으로 활용하면서 재미있어했죠.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리되고 변했어요. 저는 흥미 가는 걸 오래 붙잡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중요한 건 꾸준히 관심을 놓지 않는 거예요. 아이들은 돗자리 깔고 그늘에서 엎드려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낚싯대 만들어 낚시하거나 밭에 갈 때도 선 그어가며 그림처럼 보이게 하죠. 처음엔 싸우기도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잘 돼요. 요즘은 어른들도 만나는데 60대 이상이 많아요. 아이들과 하는 걸 조금 바꿔서 새 쫓는 모빌을 만들고 들판에서 도시락 먹으며 쉬기도 하고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요.


수옥 : 자연에서 아이나 어른과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 단순히 교육이나 체험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처럼 다가와 인상에 남아요. 시장 프로젝트나 지역 활동도 꾸준히 해오셨잖아요. 그래서 작가님에게 생태는 단지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맺고 공동체에 연결되는 개념까지 포함하는구나 싶어요. 생태를 관계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나 경험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문종 : 여기 담양은 조용하고 무료하기도 해요. 그래서 심심할 땐 광주 ‘대인시장 프로젝트’ 같은 데 참여하기도 했어요. 2008년쯤 쇠락한 시장을 살리는 프로젝트였는데 예술가와 상인이 협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무·배추에 작은 그림을 붙여서 파는 식으로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담양시장 국밥집에도 그림을 걸어봤고 손님들이 반응이 좋아서 옆 가게들에서도 전시했어요. 한 가게에서 시작된 게 장 전체로 퍼지고 심지어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도 생기더라고요. 시장과 예술이 만나는 이런 작은 실험은 지역 문화나 사람들과 연결되는 좋은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 되고요.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게 가장 오래가요. ⓒ청춘기획라이브온



예술과 교육은 흐름을 믿고 천천히, 오래오래 걷는 길


수옥 : 예술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술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네요. 지금까지 저는 예술과 교육을 접목해 생태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요. 예술을 선택한 삶이 정말 행복해서 후회하지 않아요. 예술가와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른 전공을 했다면 지금처럼 삶이 풍요롭다고 느끼긴 어려웠겠죠. 예술과 교육을 함께할 때 오는 기쁨이 크거든요. 이런 길을 걷는 저 같은 생태예술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문종 : 예술이든 교육이든 결국 오래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잘 안 될 수도 있고중간에 막히는 순간도 있지만 그게 꼭 나쁜 건 아니거든요. 끝까지 붙들고 가는 게 결국 의미를 만들어내는 거죠. 그리고요. 자기가 잘하는 거, 진짜 좋아하는 거 그걸 해야 해요.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정신없고 흐지부지되기 쉽거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살펴보고 가능하면 그걸 살려주는 게 좋아요.


또, 이론이랑 경험은 둘 다 중요해요. 미술 교육할 때 감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가끔은 책도 좀 보고 이론을 정리해보는 것도 필요해요. 근데 또 너무 머리로만 가면 현실에서 약해질 수 있으니까 직접 해보면서 같이 가야 해요. 무엇보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여유 있게 하는 게 중요해요. 막걸리 한잔하면서 생각 정리도 좀 하고요. 그런 여유가 있어야 이 길을 길게 갈 수 있거든요. 사실 진짜 중요한 아이디어는 막걸릿집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예술이라는 게 단거리 경주가 아니잖아요. 긴 호흡으로 가야 해요. 가끔은 지루한 시간도 있어요. 근데 그 시간도 즐길 줄 알아야 하죠. 물이 가득 차면 비워줘야 또 담을 수 있듯이, 그런 순환도 필요해요. 그리고 굳이 억지로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게 있거든요. 그 흐름을 믿고 천천히 가도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게 있거든요. 그 흐름을 믿고 천천히 가도 됩니다. ⓒ청춘기획라이브온


예술이라는 길 위에서 오래도록 묵묵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습니다. 박문종 작가는 그 길 위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그러나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말해주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들고 가는 것’ 생태예술이란 어쩌면 이 단순하고도 깊은 말을 실천하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순환처럼, 아이들의 호기심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억지로 잡지 않고 함께 걷는 것.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모색하는 예술. 예술과 교육이 맞닿은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사람과 지역, 자연과 시간을 엮어내는 다른 방식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느리지만, 절대 뒤처지지 않는 길입니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 스며드는 생태예술의 힘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여백과 가능성을 열어주기를 바라며 두 예술가의 대화를 이곳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김수옥 | 서양화가, 아트스페이스 소을부리 대표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펜으로 담아내는 어반스케쳐로, 사라져가는 장면들을 조용히, 하지만 따뜻하게 기록합니다. 그렇게 자연을 닮은 일상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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