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COULUMN] 깊은 심심함! - 김지원 광주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운영자
날짜 2015-07-02 조회수 3,988

 

[칼럼 COLUMN] 

 

김지원 광주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피로사회』는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되었고 출간되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2주 만에 초판이 매진됐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까지 판을 거듭하고 있다. 저자인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독일에서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올랐다.

 

   이 책의 주제는 현대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였고, 성과사회의 주체인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즉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리며,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현상분석의 탁월성에 감탄이 절로 나오며 우울한 전망은 가히 묵시록적이다.

 신경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도 매력이지만 문화와 창의성에 대한 통찰 또한 지혜로운 언어로 변주되고 있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속화할 따름이다......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려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잠적한다고 한다. 그는 ‘생각 주간’(Think Week)이라고 하는 이 기간에 자신만의 특별한 휴가를 즐긴다. 그가 은둔 휴가를 보내는 곳은 미국 태평양 연안의 서북부 지방에 있는 2층짜리 별장으로 그는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오롯이 혼자만 지낸다. 하루 두 번 음식을 배달하는 관리인 말고는 심지어 가족도 출입금지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곳에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전세계 MS직원들이 보낸 'IT업계 동향과 진로에 관한 보고서'와 '아이디어 제안서' 등을 읽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세상을 뒤바꿀 결정들을 내린다.

 

  그의 아주 특별한 휴가는 1980년 여름, 할머니의 집에서 사업전략 자료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착안한 것으로서, 지금도 사람들은 그의 은둔 휴가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아이디어 창출방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사인가 여름휴가는 도시인의 필수불가결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인식 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사람들로 넘쳐난다. 과잉활동성으로 점철된 휴가는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나 사색의 틈입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직면하는 당황스러운 경험은 일상화가 된지 오래다.

  주의 깊은 사색, 삶에 대한 관조와 경이감, 아름다움의 동경, 영원한 존재성에 대한 성찰, 그리고 창의성은 오직 깊은 심심함으로부터 기인하는데 경험과 익숙함으로부터 탈출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無心함에서 나오는 무궁한 예지는 항상 그대들의 것이다.”를 경구삼아 올해의 특별한 여름휴가를 설계해보는 것은 어떨까?

 

 

존재의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