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COLUMN]
청소년문화예술교육, 철학과 신념이 필요하다!
박호재_광주문화재단 문화사업실장
한국사회는 지금 인본이 참혹하게 훼손되는 사회적 중병을 앓고 있다. 그 양상도 야만적이다. 자식을 잃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통닭을 뜯고 자장면을 먹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극우 꼴통들, 자식 팔아 장사 하냐며 비아냥대는 냉혈한 권력, 국민 생명 보존의 궁극적인 책임자인 대통령의 고집스런 외면 등등 가증스런 일들이 만연해 있다. 병영 내 집단 구타로 사망한 윤일병 사건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도저히 문명사회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예사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절망스럽다. 민주시민사회를 쟁취하기 위한 숱한 세월의 노력들, 인문의 가치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어왔던 지난한 역사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것 같은 그 상실감을 차마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또한 그 야만의 행진에 사회 지도층과 지성의 보고인 대학 교수들, 직필정론의 가치를 지켜야 할 언론들마저 가세하고 있는 판국이니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상식 밖의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일까? 이런 회의가 일 때마다 필자는 자동연상처럼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곤 한다. 철학자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없다’고 절규했을 정도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러한 악마성이 자행되고 있을 때 침묵했던 다수 대중의 심리를 돌이켜보면 조금은 납득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광증’이다. 그렇듯 미친 기운이기에 바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바른 얘기는 광야의 외침처럼 예언으로만 떠돌 수밖에 없다. 물론 바른 예언은 언젠가는 실현이 된다. 독일은 결국 패망했고 아우슈비츠를 교훈으로 다시 문명국으로 일어섰다. 그후 유럽의 각국들은 철학의 명제로만 지성을 지키려는 사고를 넘어서 문화와 예술을 시민공동체를 진화시키는 핵심 기제로 부상시켰다.
독일의 연방헌법 정신에도 드러나 있지만, 이제 ‘보다 문화적이면 보다 좋은 사회로 나아간다-more culture, better society’는 이제 유럽국가들의 정책철학이 됐다. 사회진화의 동력을 문화에서 찾다보니 미래의 주역들인 청소년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심도 특별하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문화관련 예산들이 대폭 삭감되는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문화교육 투자 만큼은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정부의 정책 관점이 이렇다보니 정부 지원을 받는 각급 문화기관들도 청소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다윈의 진화론을 문화해석의 연구방법론으로 활용하는 학자들은 일정 종족의 ‘문화적 성향’이 종 보존이나 진화의 우성인자로 작동된다는 이론을 주창하기도 한다. 문화를 통한 이해와 소통, 배려의 습성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번성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는 논리다. 이들의 논리이건, 반문명적 대사건을 겪은 유럽의 체험이건 간에 일정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사회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된다는 견해는 이제 일반론이 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정책은 사회공동체의 철학과 신념이 요구된다. 그렇게 육화되지 않으면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문화융성정책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책의 주관자들이 ‘왜 문화융성이냐?’고 물었을 때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정녕 갖추고 있는지...의문시되고 있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