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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동행 _ 화담에 펼쳐진 붓질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채워져 가는 화담사 이야기>
-교육문화 네트워크 동행의 ‘화담에서 만나는 드로잉 시간여행’-
전경화 통신원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화담사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화정동에 그런 곳이 있었나? 도심 속에 있는 지방 지정 문화재는 도로변에 있지 않은 이상,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 알림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도 쉽게 눈길이 가지 않기도 하다. 여유 있게 사방을 바라보며 풍경 속에서 길을 걷기 보다는 우리는 뭔가에 쫓기듯 바쁘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면서, 혹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지금 우리들에게 옛 공간으로 찾아가는 발길은 쉽지만 않을 터이다.
실제 인근 주민들도 잘 찾지 않아 문화재는 현대화된 골목 풍경과 이질적으로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러한 잊혀져가고 외면 받는 문화재를 활용해서 이를 바탕으로 지역 관광 자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지원 사업을 많이들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지 행정적인 면보다는 실질적으로 지역민들에게, 혹은 방문객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접근과 모색이 중요하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안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한 고민들을 해온 한 단체가 있다.
사단법인 교육문화네트워크 동행은 지역문화 창달을 위한 역사문화 활동,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교육활동 및 교육사업과 스토리텔링 및 콘텐츠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육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2015년에 설립이 된 단체이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2016년 올해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서구의 화정동에 위치한 화담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까이 있어도 발길이 뜸한 문화재를 활용하여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생기 넘치는 문화예술교육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전통시장과 이웃한 화담사는 공동의 문화재 회복을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첫 번째 프로그램이 끝나고 현재 두 번째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는 <묵향 머금은 화담에서 나를 찾다>이다. 전통적인 서예와 현대서각의 문화예술 교육, 화담사의 편액과 역사를 바탕으로 어렵게만 느껴지는 서예와 서각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고풍스러운 화담사의 풍광을 상상 복원하여 주민들의 예술적 성취감과 만족도를 높이고자 진행되었다. 화담사를 개방하여 그 안에서 옛 풍경과 이야기들을 지역주민들의 소소한 기억과 향토 자료를 토대로 상상복원해 보는 과정이다. 서예와 서각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전통적인 우리의 미술 방식을 접해볼 수 있으니 더욱더 화담사와 조화를 이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묵향의 냄새가 높아만 보였던 화담사의 담을 허물고 굳게 잠긴 빗장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문중의 사람들만 찾았던 그 곳은, 거미줄이 쳐지고 먼지들이 쌓인 그 공간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길로 새롭게 태어난다. 가까이에서 숨 쉬는 공간으로 지역주민들과의 만남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지금 이렇게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새로운 지방문화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화담에서 만나는 드로잉 시간 여행>이다. 지역 주민들이 기억하는 화담사와 화정동 일대의 옛 풍경을 재현하고, 가까이 인접한 시장을 끌어들여 상인들의 애환까지도 드로잉으로 표현해 낸다. 이호동 강사는 작은 꽃, 돌멩이 하나, 버려진 폐품 등 주변의 소소한 것에 관심을 두어 예술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거나
버려진 사물들이 다시 <의미를 갖고, 태어나는 것>의 발견이다. 이러한 의미탐색의 과정이 중요한 것은 비단 현대적 기법의 미술을 도입하며 옛 것과 조우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역으로 화담사의 공간이 어떻게 지역주민들과 생활 터전에 흡수되어 가는지 그 성장기를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방문했던 날 화담사로 가는 길에서 시작된 담벼락 타일 벽화 작업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타일 벽화 작업은 식상할 수 있다. 마을 꾸미기 작업 중 단골 메뉴가 벽화 사업이다. 그 안의 어떤 의미와 바람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식상한 메뉴가 새롭게 퓨전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아이를 손잡고 가는 모습, 아빠가 목말을 태우는 모습과 날아가는 새, 어느 동네에서건 만나게 되는 멍멍이들까지 모두가 함께 동행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폐쇄적인 문화재라는 공간을 살아 움직이는 공간, 누구의 공간이 아니라 소중한 지역의 공동 자산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천태만상의 세상살이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훈훈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반가울 뿐이다.
이은숙 주민은 지역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작은 거지만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이곳을 지금은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 자녀들에게도 설명할 이야기들이 많아져서 흐뭇하다고 덧붙였다.
문중의 땅인 개인 사유지인 이곳을 개방할 수 있다는 건, 유교 문화의 계급 정신에서 벗어났다는 게 아닐까 싶다. ‘공동체’라는 단어를 이젠 쉽게 자유롭게 언급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그 시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사적 재산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는 시대지 않던가. 며칠 전, 한 기사를 보고 식겁한 적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 파동으로 불안에 떠는 대한민국의 강남의 한 아파트가 사건의 장소이다. 관리소장인 아버지가 주민들이 준 치약을 집에 갖고 왔다. 아직 더 많이 있다고 했다. 이를 본 아들은 분노하며 SNS에 글을 올려 파장을 일으켰다.
아버진 치약 파동에 대해 몰랐다. 경비원이란 사회적 신분과 위치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받아도 감사해야 하며,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받아도 감사해야 하는, 감히 해외여행을 가서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갑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기적인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던 <화담사>의 개방에 대해 궁금해졌다. 김현수 동행 대표와의 인터뷰에서는 그 질문이 먼저였다.
“설득하는 과정이 몇 년 걸렸다. 화담사는 문중의 땅이다. 적극적인 의사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성 있는 건물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며 소통을 하고자 하는 바람을 계속 전했고 결국 허락을 받았다. 요즘은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
화담사를 매개로 지역민들과 지역 상인들이 <공동체>라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건, 부연하자면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었다. 문화예술교육활동가들이 지역의 다양한 유산과 문화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여러 사람들의 협조와 관심에서 힘을 얻는다. 문화예술교육이 결국 지향하는 점은 정신적인 면의 회복과 부활일 것이다.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보다 더 긍정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찾아갔던 화담사에서는 단순히 어떤 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다는 표면적인 활동을 바라보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게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