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 힙!합!
박고운 통신원
가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신 토요일, 양림동에 자리 잡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로 향했다. 통유리 너머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은 문화예술교육분야에서 조금은 생소한 ‘힙합‘수업을 보러왔다. 일단 뒤에 앉아 아이들을 한명씩 바라보았다. 글쎄, 학생인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기 시작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힙합으로 즐기고 표현하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단체 NOP를 먼저 소개해야할 것 같다. 도끼가 수장으로 있는 ‘일리어네어‘ 레이블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처럼 NOP역시 음반을 직접 발매하고 랩, 노래, 프로듀싱을 맡아서 하는 레이블이다. 함께 음악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각자 학원 강사로서 수입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는 단체 회원들이 함께 모여 힙합 음악을 가르칠 수 있어서 이번 사업에 신청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평소 수업은 고등학생 11~13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오늘은 비가 온 탓에 출석률이 저조하여 학생 6명에 NOP 단체 회원들 5명이 함께 모였다. NOP단체의 최고령자가 27살이라고 하니, 선생님과 학생들의 연령대가 비슷해 학생과 선생님이 헷갈릴 만하지 않겠는가. 학교에서 하는 딱딱한 수업이 아닌, 동네 형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힙합을 즐기고 고민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형태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시간은 미디수업이었다. 미디 프로그램을 가지고 기타, 건반, 신디사이저, 베이스, 멜로디를 넣어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싱 작업을 알려주셨다. 아무래도 컴퓨터가 필수인 수업이라, 멘토 네 분이 노트북을 준비하셔서 1:1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평소 나도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직접 대중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눈으로 보게 되니 참 재미있어 보였다.
먼저 도끼의 ‘lonely nights’라는 곡을 들어본 뒤, 그 노래와 비슷하게 곡을 만들어보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먼저 기타를 넣고, 드럼비트를 킥-스네어 이런 식으로 키보드로 찍는다. 킥보드가 드럼이 되어 음악이 만들어진다니, 티비에서만 보았던 곡 작업방법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다음 건반 코드를 찾아 입력해야하는데, 이 부분은 어려워보였다. 학생들이 Bm, C# 등 어려운 코드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강사님께서 도와주셔서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오늘 나온 아이들은 1기 수업을 들을 후, 다시 2기 수업을 신청해 듣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 1기 수업을 듣고 만족한 아이들이 계속 배우고 싶어서 2기도 다 신청했단다. 그래서 1기와는 다른 곡을 선택해 미디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진학 목적이 아닌 대부분 가볍게 취미로 힙합을 배우는 아이들이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사춘기 아이들이 힙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와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좋아 한단다.
요즘 대중들에게 힙합음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와 같다. 이 흐름에 발맞추어 학생들의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힙합을 문화예술교육에서 다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 학생들이 안고 있는 스스로의 문제나 고민들을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만들면서 해소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음원까지 발매한다면 아이들의 자존감과 성취감은 높아질 것이다.
학생들 중 ‘랩퍼‘의 꿈을 가진 한 친구를 만나보았다. 어떻게 이 사업을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신청하게 되었다는 것. 힙합을 하는 친구들은 거칠고, 학교에 부적응 할 꺼라 생각했는데 그건 선입견이었다. 자신이 랩퍼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께서 이 사업을 추천해주셨고 지원하게 되었단다. 이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은 북구 운암동이다. 이곳 양림동까지 오려면 거의 한 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 그럼에도 이 힙합수업의 매력에 빠져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거뜬히 이겨낸단다.
이 수업을 들을 때 좋은 점을 물어보았다. 일단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한 분 한 분 모두 개성이 있는 선생님들이라 더욱 좋고 형처럼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수업을 듣고 난 뒤 스스로 깨달은 점, 얻어가는 게 많다고 느꼈단다. 팀미션을 통해 친구들과 따로 단체카톡방 등에서 연락하다보니 서로 친해지게 되어 좋았다고도 했다. 또한 여가 생활을 따로 할 수가 없는데, 이렇게 주말에 나와서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트레스도 풀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 좋단다. 이곳에서 온 아이들은 거의 혼자 와서 친구들을 사귀고 간다고 덧붙였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힙합을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실용음악 수업은 사실 학원에서 1:1 과외 식으로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는 여러 명과 함께 모여 배울 수 있는 이곳이 더 좋다고 말해주었다.
미디 수업이 끝난 뒤에는 랩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즘 랩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세라 관심이 있었는데 정말 기대되었다. 랩을 어떻게 알려주실까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이론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국어시간과 같이 직유법, 은유법, 형상화, 제유법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힙합에서는 허풍 요즘말로 스웩을 드러내거나 콘셉트를 잡아 가사를 쓴다. 그리고 라임을 맞추는 게 기본이라고 하시면서 실습에 들어갔다. 일단 ‘ㅗ,ㅏ’가 들어간 단어(말)를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콜라, 속담, 고와, 동작, 좋아, 모아, 통장, 오락, 골라, 놀자 등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그 뒤 네 개를 골라 한 문장 만들기를 했다. 랩에도 이렇게 차근차근 밟아가는 단계가 있구나 싶어 꽤 체계적이라 느껴졌다. 멘토샘들과 학생들이 섞여서 한명 한명 발표를 해나갔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 뒤에는 랩 개사하기가 이어졌다. 다이나믹듀오의 출첵 플로우는 그대로 살리며 랩을 개사하는 것이었다. 신나는 노래가 틀어지고, 다들 리듬을 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랩을 개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 드디어 발표시간이 다가왔다. 마이크를 들고 한 명씩 나와 랩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부끄러워하는 것 없이 흥이 넘치는 랩이 이어졌다. 랩을 하고 강사님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첫 번째 학생의 랩은 자신의 마음이 담긴 랩이라 잘했다는 칭찬을 해주셨고, 두 번째 학생은 플로우를 직접 메이킹 했다며 ‘물속에 비친 난 척척해’와 같은 가사를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다. 세 번째 학생은 ‘놀아봤어, 홍대클럽갔어’ 라는 가사가 들어왔는데 이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사실만을 쓰는 게 좋다고 조언 해주셨다. 마지막 무대(?)는 랩퍼가 꿈이라는 학생이었다. 역시 자신감이 있고 전달력이 좋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다함께 무대를 즐기며 수업은 끝이 났다. 사담이지만, 다 같이 점심을 먹자면서 함께 나가는 모습에서 정말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멘토샘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세 시간의 수업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오늘은 미디작곡프로그램과 랩 수업을 했지만, 다른 수업에선 무엇을 할지 궁금해졌다. 오늘 수업이 있기까지는 리듬, 박자, 악기 연주, 가상악기, 코드 수업 등으로 미디 프로그램의 기본을 익혔다. 랩파트에서는 랩용어, 발음과 발성, 박자감과 끝음처리하는 것을 배웠었다. 앞으로는 자신의 만들어낸 비트위에 얹을 노래와 랩의 구성을 직접 짜보고 음악을 완성해보는 수업이 남아있다. 마지막에는 공연 기획과 함께 실제 공연도 하고 음원도 등록해볼 것이라고 하니 정말 기대가 된다.
문화예술교육은 대안적인 교육의 흐름으로 대두됐다.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받고 싶은 교육이 무엇일지 묻는다면 ‘힙합’도 그 대답 중 하나일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은 위에서 아래로의 교육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의 교육이 되어야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꿰뚫는 문화예술교육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