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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손’을 맡기고 “다함께 연주하자!”
아프리카 리듬의 ‘아냐포’
통신원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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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꼬레아(KOREA), 뮤직, 하나. 같이, 노래해요.”
오늘 무대 위에서 외친 단 한 번의 한국말이다.
그 한 번의 외침이 깊고 따뜻한 울림이 되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두구두구, 박수소리 대신 북소리가 울려퍼진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리듬이, 오늘만큼은 우리의 언어이고 대화이다.
아냐포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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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공연이 매진이었단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티켓을 쥐고 있던 손에 더 꼭 힘을 주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아프리카 소울을 가득 머금은 음악이 공연장 전체를 꽉 메우고 있다. 귀가 즐거운 입장 후 자리에 앉을 때면, 누구라도 평소에 아껴뒀던 감탄사를 내뱉게 되리라. “우와! 말로만 듣던 그 잼베다!”
그렇다. 정말 잼베다.
600석이나 되는 공연장의 모든 의자에 잼베가 하나씩 놓여있다. 저마다 사이즈나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내 자리에 있는 잼베가 옆 자리의 잼베보다 더 크다는 사실에 이유 없는 뿌듯함과 ‘내 것이 더 크지롱’하는 말도 안되는 우월감(?)을 느끼며 자리에 착석했다. 잼베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툭 건드려보았다. 퉁, 하고 맑은 울림이 난다. 이 울림 600개가 어우러져 오늘 무대를 함께한다는 말이지.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뛴다.
현재 광주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타악그룹인 ‘아냐포(AnyaFo)’는 서아프리카 말링케족 언어로 ‘다함께 연주하자’라는 뜻이다. 서아프리카의 악기와 리듬을 기반으로 한국정서와 현대적 감성을 접목시킨 음악을 하고 있다. 공연테마인 ‘관객참여 형 공연’은 아프리카의 사상적 뿌리인 ‘우분투(함께 있어 내가 있다)’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무대에서의 연주자와 객석에서의 관객으로 분리된 공연이 아니라, 모든 관객들이 저마다의 악기(잼베)를 가지고 함께 연주하며 연주자·댄서의 몸짓과 리듬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윽고 공연장을 가득 채우던 잔잔한 음악이 조용해지고 조명도 함께 꺼졌다. 고요함도 잠시, 말을 모는 듯 급하고 강한 타악 소리가 경쾌하게 귀를 때리며 공연이 시작된다. 시끄럽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잊고 공연에 흠뻑 빠졌다. 잼베 두 대를 필두로 모듬북, 드럼, 그리고 낯선 아프리카 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합주는 흥미로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프리카타악연주’를 한다고 해서 단순히 이색적인 타악연주만 한다고 생각했다면 노노. 아냐포가 관객참여 형 공연을 지향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공연자와 관람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공연이라는 것이다. 한바탕 리드미컬한 공연이 이어지고 나서 조명이 환해지더니, 포스가 철철 넘치는 여성 한 분이 무대 앞으로 나와 외친다.
“와싸와싸!”
흥겨운 리듬과 함께 한바탕 춤판을 신명나게 펼치고는, 별안간 관객들에게도 함께 잼베를 치자는 시늉을 하며 신호를 준다.
“원투쓰리포 탁! 나이스~!!”
이건 구령에 맞춰 잼베를 치라는 뜻이다. 오락실 펌프게임을 하듯, 박자에 잘 맞춰 잼베를 치면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빠씨붐붐빠! 아차차차! 호호호호호호호!”
이건 구령에 맞춰 잼베를 치라는 뜻이다. 온 객석이 하나가 되어 같은 박자로 잼베를 두드리고 있다. 입장할 때에 상상했던 바로 그 광경이다! 주문에 홀린 듯 너도나도 신나서 타악연주자가 되는 걸 보니,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는 음악만한 도구도 없는 듯하다. 이 얼마나 매력 있는 장르인가! 이처럼 아냐포는 듣는 재미, 보는 재미 뿐 아니라 참여하는 재미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초콜릿 빛 피부색의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 흥을 돋군다. 음악과 한 몸이 된 그 남자는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진짜 아프리카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가슴이 쿵쿵쿵 뛴다. 그 뿐 아니다. 무대 위에는 한 가상 세계가 연출되어있는데, 음악과 무대 연출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함께 간다. 빨간 조명으로 달구어놓았던 해가 푸른색의 보름달로 변하면 리듬과 멜로디도 잠잠해진다. 몽환적이기도 한 무대 연출 또한 감탄이 나온다. 흘러나오는 장미꽃을 주고받을 때에도, 격정적인 춤사위가 벌어질 때에도, 음악이 하나의 언어처럼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며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이야기 하나가 끝나면, 관객들도 박수 대신 리듬에 맞게 잼베를 두들기며 환호를 전달한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공간”
“음악으로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
열정적인 무대가 끝나고 난 후에도 공연장의 열기는 쉬 가라앉지 않는가보다. 앞쪽에서 관람하던 어린 친구들이 한참을 못 떠나고 있길래, 질문을 건네 보았다.
Q. 오늘 공연 어땠어요?
A1. 공부방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신기하고 재밌는 게 진짜 많았어요!
(김태진 / 광주교육대 부설초 3학년)
A2. 의자에 잼베가 있어서 같이 치면서 보니까 더 신났어요! 또 오고 싶어요.
(진도연 / 광주교육대 부설초 3학년)
아,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바깥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금세 이 어린친구들은 문밖으로 뛰어나간다. 필자도 문 밖에서 소리가 나서 총총걸음으로 나가보니, 흥에 겨운 아냐포의 멤버들이 바깥 홀에서 또 한 번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너스 공연인 듯싶다. 빙 둘러싼 관객들은 더 신났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더 큰 박수와 함성으로 환호한다. 친절하게 포토타임까지 제공해주시고 나서야, 오늘의 무대 MC, 오지영 선생님과 잠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Q. 오늘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관객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저희의 이름인 아냐포, ‘다 함께 연주하자’에서 느끼실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 음악에서 주는 자연의 좋은 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어우러지게 하기에 충분하거든요. 음악의 목적 자체가 어우러지고 함께하는 음악인만큼, 어떻게 하면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석에 잼베를 세팅해보게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반응이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전석 매진이었고요.
Q. 아냐포라는 팀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A. 저는 자연의 울림을 이용하는 서아프리카의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 안에서 일상의 행복감을 찾고, 인간 본연의 자연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죠. 그것이 아냐포의 음악철학이라면 철학이 되어서, 지금까지 공연을 해오게 되었구요.
역시 그랬다. 공부방에서 머리 끙끙 싸매다 나왔을 녀석들을 이리도 방방 뛰게 만들 수 있는 것. 생소한 ‘서아프리카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소리마저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아냐포만의 순수한 매력 덕분이 아닐까.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녹음해두었던 아냐포 공연모습을 다시 보다가, 급 궁금해졌다. 서아프리카의 음악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만 접할 수 있어 어렵고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음악이 새롭게 다가오는 하루였다.
아냐포 콘서트 현장을 전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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