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눈으로 본 광주의 어제와 오늘>_이서정 통신원
운영자
날짜 2016-12-09 조회수 1,086
첨부파일


청소년 눈으로 본 광주의 어제와 오늘

2016광주청소년문화탐험대 수료식 및 미디어아트 작품 시사회

통신원 이서정

5월에 첫 걸음마를 뗀 <청소년 문화탐험대> 드디어 탐험대원들의 한 해의 결과물을 뽐내는 자리이다. 초록의 봄에 만나, 푸르른 여름, 모든 것이 무르익는 가을을 지나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이 올 동안 우리 탐험대원들의 키도, 광주에 대한 사랑도 한 뼘 더 자랐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간 그 곳. 영화관 같은 분위기의 아트스페이스 5층. 입구에는 수많은 헬륨가스가 든 풍선이 가득한 포토존이 손님맞이를 해 준다. 누구나 영화배우가 되는 Photo Wall에서 필자도 사진 한 컷 부탁해 본다. 사진을 찍는 작가님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모델 삼아 이 순간을 기록한다. 수료식이 진행된 후 탐험대원들이 직접 제작한 미디어아트 시사회를 진행한다고 한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퍼포먼스가 진행 된 후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된 채, 수료식은 시작되었다.

먼저, 광주문화재단 서영진 대표이사님의 인사말씀.


겁나게 멋져브요잉~ 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을 일구어 낸 탐험대원들이 기특하신 듯 그들의 열정을 칭찬하신다. 우리 고장을 아는 것은 세계로 나아가는 동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의 국적은 바뀔 수 있지만,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고향” 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덧붙여 유네스코가 지정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인 우리고장을 탐험한 결과물을 미디어아트로 빚어낸 탐험대원들이 자랑스럽다고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이 자랑스러운 결과물들을 이곳에서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에 전시하여 광주 청소년들의 남다름을 자랑하고 싶으신가보다.

여기서 우리 탐험대원의 소감을 듣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다.


김나연 학생 : 저는 친오빠와 함께 탐험대에 들어왔는데요, 평상시 집에서는 오빠와 잘 이야기하지 않는데, 탐험대 활동을 하면서 오빠와 대화도 많이 하고, 더 친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탐험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무등산’입니다. 사실 저는 무등산을, ‘광주에 있는 큰 산’ 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탐험대 활동을 하면서 무등산 봉우리 이름에 맺힌 의미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등, 무등산에 얽힌 모든 것에는 우리 조상의 광주에 대한 사랑과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탐험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날씨였습니다. 가끔 비가 올 때가 있었는데 비가 오면 탐험을 하는 데에 제약이 많아서 그게 진심으로 아쉬웠어요. 탐험할 곳은 많은데...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내부 활동을 할 때면, 빨리 밖으로 나가 탐험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김은강 학생 : 저는 청소년 문화탐험대 출석률 100%, 광주청소년문화탐험대의 재간둥이 김은강입니다. 제가 탐험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내 고장 광주 그 자체’입니다. 탐험대 활동을 했던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고 진심으로 재미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했던 향교, 광주의 생명줄인 광주천, 광주읍성, 무등산 등 모든 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찾아갔던 이이남 아트센터도 신기한 작품들이 많아서 재미있었습니다. ‘아 이런 것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 예술작품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탐험대에서 예쁜 선생님들을 보는 것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역시 아까 나연이가 했던 말과 같이 날씨가 꾸리꾸리할 때. 제 마음도 꾸리꾸리 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탐험을 해야 했거든요. 이런 아쉬운 점이 있었어도 저는 탐험대를 잊지 못할 거예요. 내년에 또 다시 만나고 싶어요.

디렉터 박시훈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청소년 문화탐험대 활동은 총 22차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22번의 토요일을 함께 지내면서 서로 정들고, 익숙해졌다는 것.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22번을 만나면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탐험대 활동이 끝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섭섭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 마음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의 미디어아트 작품 시사회를 시작한다. 개봉박두!

1조의 작품. <광주향교>


1조의 작품은 조선 시대에 건립된 ‘광주향교’ 의 이야기를 미디어아트로 제작한 작품이다. 향교는 고려시대 안향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가서 공자의 초상과 문하제자,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초상 및 위패를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광주에 쳐들어와 향교의 모든 건물을 불 질러 다시 세운 후 수차례의 보수를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는 25성현의 제사를 봄가을에 지낸다고 이야기한다. 1조 탐험대원들은 이렇게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우리 곁에 있는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미디어아트 영상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2조의 작품. <광주천>

2조의 작품은 종이배의 관점에서 본 광주천이다. 사람도, 동물도 아닌, 물에 닿으면 찢어져버릴 종이배의 관점이라고 하니 매우 신박하다. 2조의 종이배는 광주천의 과거와 현재를 여행한다. 광주의 젖줄 광주천은 예전에는 백일홍나무가 많은 개울이라 ‘자미탄’ 으로 불렸으며, 인근에는 담양 소쇄원, 환벽당, 취가정, 식영정 등 유명한 숲과 정자가 모여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하천 일대에는 너구리, 두더지, 도롱뇽, 참붕어 등의 다양한 동물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라고 하며 광주의 생명줄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3조의 작품. <광주읍성>



3조는 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주제를 <광주읍성> 으로 정했다고 한다. 먼저, 조원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으로 시민들의 광주읍성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한다. 광주읍성은 광주의 방어력을 높기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읍성 철거령으로 철거되었고 현재는 0.083%만 복원이 되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우리 광주의 소중한 문화재인 광주읍성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어른들에게 부탁한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이 어른들보다 더 자라 있어서 마음이 짠하다.

박시훈 디렉터는 다시 말한다. 미디어아트는 융·복합 예술이기 때문에 청소년 문화탐험대원들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으며 아이들은 언어가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수단인 미디어아트로 어른들에게 대화를 시도한 것이라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탐험대원들의 22주간의 여정.

이들은 자신들이 어지간한 어른보다 광주를 더 잘 알 것이라고 자부한다. 탐험대원들의 그 근거 있는 자신감에 광주 토박이인 나는 경각심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광주를 알고 있을까?’ 라고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 고장에 대한 철학과 애정. 우리 광주 청소년 문화탐험대원들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광주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시사회 말미에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김영순 팀장은 말한다.

우리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탐험대 활동은 나중이고 너는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너는 서울로 대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광주를 아는 것은 나중에 알아도 된다.’ 라는 말들로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학원에, 기숙사에 묶어 놓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공부, 중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나서 자란 고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면, 아이들이 타향살이에 힘들 때 어떤 기억에 마음을 기대야 할까? 무엇이 아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줄까? 바로 마음속에 있는 ‘고향’ 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처럼 말이다.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 역시 자신들과 같다는 것을. 자신들처럼 마음 기대고 추억할 ‘고향’ 이 필요하다는 것을.

<에필로그>

한 뼘 더 자란 광주 사랑 ; 광주에서 만나자!


‘마지막’ 이라는 헛헛한 느낌은 어른들보다 이별을 덜 겪어 본 아이들에게 더한가 보다. 아이들은 재차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탐험대 활동이 학교에서 하는 체험학습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주도하고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 더 애착이 가고 재미있었나 보다. 대답하지 못하고 웃는 필자에게 아이들은 학교가 달라도, 나이가 달라도 자신들끼리 뭉쳐서 꼭 만날 거라고, 인심 써서 선생님들도 끼워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역시 청소년! 마음의 치유 속도도 빠르다. 이 아이들은 지금은 각자 학교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다른 지역, 다른 국가로 널리널리 세력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당당히 광주 사람임을, 광주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한 번 놀러 오시라고 자신이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말할 것이다.​

 

 

 

잔잔한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