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호]함께크는나무협동조합의 자화상-자기를 그리고 지지하여 주는 상_최류빈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8-05-02 조회수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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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함께크는나무협동조합의 자화상

-자기를 그리고 지지하여 주는 상

최류빈_9기 모담지기

▲프로그램이 진행된 <작은도서관 아이숲> 내부 정경

 

 모든 자화상은 무척이나 로맨틱하다. 세상에 허다한 아름다움들 기꺼이 풍경으로 놓아두고 오직 나만을 그린 이기에! 달큼한 다짐이다. 마치 한 폭의 종이에 스스로를 담는 시간이 저 설경이나 꽃비를 거두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무엇에도 비견될 수 없는 순간의 고백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고백은 찰칵거리는 셔터 음 속에서 잊혀져가는 듯하다. 찰칵- 기계음 소리 한 번에 우리는 장고(長考) 끝 붓질을 잊고, 찰칵 기계음성 또 한 번에 가장 빛이 잘 드는 각도만을 생각한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생김생김을 마주하는 것은 이제 아날로그 혹은 구식이 되어버린 걸까, 각박 다난한 세상에 그 많던 여유가 다 떠나버린 것일까?

 

 

 비행하는 여유를 지상으로 힘껏 잡아당기는 <함께크는나무협동조합>의 ‘자화상’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가장 클래식한, 달리 말해 가장 오래 사랑받는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자화상을 주고받는 약간의 얼굴들 여기 각도를 모른 채 아스러진다. 초면의 사람들은 빛나는 표정으로 스스로를 꽃비라고 소개하고 또 그렇게 쏟아진다. 꼭 나도 서둘러 팬을 집고 같이 둘러앉아야 할 것만 같은 부드러움, 여기 진짜 자신을 만나는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기꺼이 자화상이 되기로 결심한다. 꼭 거울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천진한 표정 평면 위에 아로새긴다. 가장 아름답고 오래 된 방법으로.

 

“우리는 고매한 몸짓을 정중히 거부한다. 우리 맘껏 유치하자”

  

▲친교를 위한 아이스브레이킹, ‘몸으로 말해요’

 

 프로그램은 지역특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이채롭게 꾸려졌고 그 중에서 한 귀퉁이인 ‘자화상’ 그리기가 금일의 콘텐츠, 수업은 서구에 위치한 <작은도서관 아이숲>에서 진행되었는데 문자 그대로 작지만 속을 가득 메운 책등과 사람들이 숲을 방불케 하는 인상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참가자가 ‘여성’에 한정한다는 점인데,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거나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을 경험해고 싶은 여성들과 프로그램을 공유공락 하려는 좋은 의도가 담겨있다. 특히 육아기에서 벗어난 중장년의 여성이 다수였는데, 더 이상 자녀의 ‘타화상’ 만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벗어나 인생 이모작의 시발점에 서려는 열망들이 보였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자아를 인지하고 타아와의 합치와 더불어 삶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돌이켜 보는 기회였다. 중반  즈음의 삶에서 좋았던 기억은 반추하고 부족했던 기억들은 퇴고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서로 거울이 되어보는 몸짓 자화상

 

 전체적인 진행은 추현경 작가가 도맡아 주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소개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간단한 별칭 만들기로 프로그램의 포문을 열었는데, 구체적인 행위를 몸짓으로 묘사하는 퀴즈에서부터 상호 간 울처럼 행동해보는 유쾌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오랜만에 경직되었던 낯선 근육의 무장을 해제하고 마음껏 넘어지고, 웃고, 뻗어보는 춤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활자를 몸짓언어로 표현하고 때론 타인의 거울이 되는 이 일련의 과정이 그저 봄날의 장난에 지나치지는 않았다. 우리는 너무 직관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관습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가고 있다. 고착화된 관습 속에서 사람들은 유연한 사고를 박탈당하고 가장 고상해지기를 강요받고 있는지 모른다. 프로그램은 아이처럼 웃는 어른들을 마주하게 하는 기묘한 경험, 혹은 몸짓으로 쓰는 수기다. 유년의 무엇처럼 뜨겁게 웃으면서 차가운 어른일 수 있는 이접異接이 바라보는 이마저 유치하고 싶게 만든다. 우리는 이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포즈로 기억되는 자화상인지 모르고 웃자- 아직 펜을 들지도 않았는데 하나뿐일 명작들, 공간 속 가득하다. 

  

▲ 서로 얼굴을 그려주는 모습

 

다음으로는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를 간단하게 선으로 그린 뒤 셀로판지를 꺼냈다. 얼굴 앞에 이를 고정한 뒤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기도 하고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윤곽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가장 순수한 내가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른바 선처럼 누워 펜을 쉽게 때질 못하기도 했다. 매일 짊어지고 살아가는 ‘얼굴’이라는 내가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는지 고민할 여지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명료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프로그램에서 웃는 표정을 남긴다.

  

▲ 완성된 스물 두 개의 자화상

 

 끝 무렵의 참가자들은 마치 꽃다발을 안고 돌아가는 표정이었다. 자화상이 가장 달콤한 고백이 아닐까 했던 의문이 해소되고 있는, 순간 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빗금이 풀어지고 첨벙대는 유년을 사는, 긴 행복이지 않을까

 슬픔의 건수가 너무 많은 삶 속에서 어쩌면 내 얼굴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기쁨이지 않을까? 그 속의 파문에 젖고 때론 조용히 침잠하면서 ‘진짜 나’를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물음이다. 자화상 프로그램이 그런 기회를 선명하게 제시해 준 것 같아 뜻 깊었다. 위태롭게 젠가 같던 이 生의 진동에 부목 하나 덧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류빈(9기 모담지기)                                                                                   내가 내뱉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된다면 좋을 텐데, 만약 그런다면 나는 하얗게 밤을 새우면서라도 무슨 말이든 해줄 거다. 단 한 사람과 공진하기 위해서라도 자꾸만 활자들을 내뱉는 지독한 버릇, 나는 단어로 언어적 문신을 그려댄다. 그렇지, 언어라는 건 정말 재밌다 내 앞에 잔뜩 차려진 재료들 같아. 나는 여기선 한철 모담지기라는 이름을 살 예정이고, 분명 또 우린 활자로 언제 어디선가 만날 거다. 이렇게 짧은 소개가 될는지- 모든 건 이름 모를 활자 밖 당신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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