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호]아줌마 본색(本色), 진짜 나로 놀아보기<문화집단 열혈지구>_곽주영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8-05-03 조회수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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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아줌마 본색(本色), 진짜 나로 놀아보기

<문화집단 열혈지구> 

 

곽주영_모담지기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그렇다면 나를 안다는 것을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말한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문화예술은 좋은 놀이터가 된다. 마음껏 뛰어 놀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번 취재는 굉장히 의미가 깊었다.

 

4월 26일, 오전부터 남구의 문화예술 작은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 것도 잠시, 참여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들이 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남구 문화예술 작은 도서관에 모인 참가자들

 

<나만의 예술노트 만들기>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예술노트에 대해 간단한 안내가 이어졌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25차시의 시간 동안, 나만의 예술노트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참여자들에게 과제로 주어졌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적고 그려내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예술노트는 삶의 기록이자 자료가 된다. 두고두고 볼 수 있고, 자녀들에게까지 남길 수 있는. 간단한 기록이지만 세대 간 공감의 매개가 될 수도 있고 오래 남길 창작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25차시 동안 참여자들의 마음이 남겨질 예술노트

 

 참여자들은 예술노트 앞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앞장부터 성의 있게 메꿔나갔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예술노트에 빼곡하게 들어서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흥(興), 나만의 신바람. 이야기를 나눠보자!>

 간단한 안내가 끝난 후, 전경화 강사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참여자들에게 물었다. 나만의 흥이 있다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흥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지. 자신이 흥을 표출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말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야기 전에는 당부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 가식 없이 편하게, 나이는 모두 잊고!”

 

 잠깐 동안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누가 먼저 나서야 할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깨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삶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매일 아이를 돌보는 게 답답했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국악을 들으며 흥을 느꼈어요.”

 

“나는 노래도 못하고 재미도 못 느꼈거든요. 그런데 몸이 아픈 친구를 위해 함께 노래교실에 다니자 박수가 절로 나고 몸도 흔들게 되는 게 신기했어요.”

 

“가장 우울했을 때 여행을 가요. 거기서 삶의 에너지를 느끼죠.”

 

“민요를 부를 때 흥이 나요. 내 삶은 한(恨)스럽지 않은데, 이상하게 잘 표현되는게 신기해요.” 

 

 참여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었다. 박수도 치고 고개도 끄덕이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있음을 마음껏 표현했다. 민요를 3개월 배웠다는 참여자는 성화에 못 이겨 사철가를 불렀고, 다른 참여자들이 따라 부르거나 추임새를 넣어주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화이트보드에 빼곡하게 채워진 참가자들의 이야기 

 

 이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전경화 강사는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화이트보드에 정리했다. 참여자의 이야기를 파악하고 구조화하여 보기 쉽게 그려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참여자에게 자신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공감하였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일방향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해나가는 진행이 인상 깊다.

  

▲각자 자신만의 책을 찾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는 1층 작은 도서관이 북적였다. 아줌마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책을 찾아오는 것이 미션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이나 구절을 보고 내가 생각하는 아줌마를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나를 끄집어내기>

책을 찾은 후에는 찾은 책에 대해서는 나누어진 종이에 간단히 적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준비된 무대 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짧은 즉흥극을 진행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나’가 툭 튀어나오게 된다. 

  

▲ 마련된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 참가자

 

누구나 각자의 드라마가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단편영화처럼 펼쳐질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있었던 일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툭툭 던져졌다.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즉흥극으로 펼쳐졌다. 누군가는 결혼식 30분 전, 신부대기실에서의 모습을 연기했고 또 누군가는 진상아줌마, 정신을 놓고 춤추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무대 위로 걸어 나가며 연기하는 참가자

 

“여자는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면서 아줌마가 된다. 여러분의 결혼은 어떻습니까?”

 

 

 처음엔 사람들 앞에서 즉흥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쑥스러워하던 참여자들은 무대에 서서 몇 마디를 읊자 백팔십도 돌변했다. 자연스레, 서서히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하는 것 같았다. 책의 구절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켜보던 나 또한 즉흥극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연기 속으로 빠져들며 진짜 자신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내면의 아픔, 사회를 바라보던 시선,  아줌마로서의 애환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엉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참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줌마,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었다. 


▲ 스스로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참가자

 

“갈 곳이 없어. 갈 데가 없어. 시어머니는 오늘 이거 다 해놓으라 했는데.” ​

 

 아줌마, 그저 중년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듣는 그 단어는 다소 부정적으로 느껴졌으며, 억척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취재도 처음에는 편견이 함께 했다. 중년 여성들이 진짜 나를 찾는다는 행위를 아름답고 애잔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으로서 잃어버렸던 삶, 그들이 잊고 있었던 꿈과 청춘을 되찾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것은 아줌마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런 의미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 그런 시선 속에서 잊어버렸던 아줌마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차시가 끝나고, 느낀바가 많은 만큼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프로그램 담당자인 전경화 강사에게 물었다. 

Q. 문화집단 열혈지구는 어떤 단체인가요?

A. 문화집단 열혈지구는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미술, 미디어아트 등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콜라보 작업을 하거나 협력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다변화하는 시대, 장르의 비틀기와 만남을 통해 의외의 상상력과 꿈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작업을 함께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도반의 길과 비슷하기도 하다. 꿈을 꾸기에는 현실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끝까지 버티면서 삶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예술가에겐 독자와 관객의 존재가 중요하다. 간혹 자기애가 강한 예술가들을 보게 된다.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 좁혀지지 않는 삶과 예술의 간극, 동떨어진 예술가 놀이가 시작된다. 가장 평등하고 열려있어야 할 예술판에 권력이 들어가고 학연, 지연이 들어선다. 어깃장을 놓고 싶어졌다. 

 

 이러한 반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문화민주주의의 이념을 바탕으로 다수의 대중이 예술 창작에 직접 참여하여 예술가와의 상호교류(interaction)를 통한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대안예술운동인 “커뮤니티 아트”를 통해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겉핥기식 커뮤니티 아트가 아닌, 개개인의 감성과 그들만의 드라마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의의가 있다. 예술가와 시민 모두가 서로의 삶에 끼어들기를 허용하면서 예술적 감성과 감각을 일깨우는 뮤즈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진심이 필요하다.

 열혈지구의 모토인 ‘삶은 곧 예술이다. 예술은 곧 삶이다’는 결국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를 함께 찾는 과정에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순 없지만 위로할 수 있다. 예술의 위로는 어떤 특권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가깝게 다가서야 한다고 믿는다. 

 

Q. 앞으로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서 가장 주안점을 두시는 부분이 있다면?

A. 우리 민족은 ‘한 오백년’을 부르다가 ‘태평가’를 부르는 민족이다. ‘한’이라는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있다. 이것은 ‘한’이 되었다가 ‘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유전적 요소를 가지고 일상에서 ‘흥’을 찾는 프로그램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흥놀이는 여러 테마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이번엔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흥놀이를 하는 셈이다. ‘나’에서 시야의 확장, 공동체로 더욱 넓혀간다. 인문학적 사유니 하는 어려운 말보다는 인문학 또한 어떻게 흥놀이로 변주해서 갖고 놀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걸 통해 참여자들이 어떻게 일상이 “예술”적으로 놀이하면서 바꿔질 수 있는 지, 나의 삶 또한 특별함이 있다는 인식의 변화에 주력하고자 한다.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팁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 과정의 끝에서 비로소 나의 일상과 주변의 일상, 나아가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의 ‘아줌마’라는 계층에 대한 씁쓸하고 서글픈, 솔직하면서도 유쾌한 담론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인식의 변화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면서 삶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Q.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A. 차분한 말투 속에 묻어나오는 약간의 머뭇거림에서, 다시 또 느낄 수 있는 강한 열망들, 한 참여자와 처음 통화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참가 신청을 하려는 데, 나이도 걸리고 남 앞에 서는 것도 걸린다고 했다. 영등포 인력사무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한 남자를 보고 시를 썼다는 엄마가 생각났다. 시는 감동적이었고, 묘사가 깔끔하고 소질이 있었다. 그 때 감동 받은 경험이 생각났다. 엄마보다 더 연세 드신 이 참여자에게도 왠지 모를 기대감이 느껴졌다. 삶에서 선택과 기회는 굉장히 중요하다. 무언가 교주가 된 것처럼 “저를 한 번 믿고 오세요. 아니면 그냥 가셔도 괜찮아요.” 왜 그런 말이 툭 튀어나왔는지 몰라도 그 분과 몇 분의 통화를 나누는 동안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그 분이 적절한 조명과 음악과 이미지의 조화 속에서 떨리지만, 집중 있게 자신의 말들을 풀어놓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무어라 정리되지 않지만 파도가 밀려오듯 몰아치는 감정의 전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가슴도 휩쓸고 사라졌다. 밀려오는 잔물결 뒤에, 우리는 눈시울을 적셨다. 

 

Q. 프로그램 진행 때, 배경 음악으로 볼레로를 틀어주셨다. 그 때 잠깐 볼레로를 선택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는데, 다시 한 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A. 단체의 주제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라벨의 볼레로를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한다. 정점을 위해 계속해서 변주하는 과정은 마치 우리의 인생 같다. 점점 격앙되고 웅장하게 커질수록 감정 또한 계속해서 증폭 되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 사건을 볼 때 흔히 A는 A라고 생각한다. 가십거리로 치부한다. 또 다른 상처나 폭력의 양상이다. 반면에 A를 확장해서 B, C, D……로 계속해서 변주하면 보다 더 다양해진다. 내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 혹은 내 주변부, 사회를 이렇게 한 줄기를 가지고 변주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곡이다. 예술의 일상화를 위해서 첫걸음은 관점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보잘 것 없는 일상도 부풀어 뻥튀기를 한다면, 그나마 재미있게 해준다. 이러한 전제를 서두로 강의실 안에서 뻥튀기 장수가 된다. 참여자들의 몸짓과 말들에 적절한 터치를 하고 자극을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뻥이요~ 외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 기적처럼 뻥! 하고 터지는 순간이 온다.

  

▲ 자신의 삶을 함축한 이야기로 즉흥극을 펼치고 있는 참가자 

 

 아줌마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 아줌마로서의 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참여자들 스스로 찾아 갈 것이다. 꾸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미화시키지도, 왜곡하거나 생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과 진솔한 의미를 온전히 탐색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11월 3일 공연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꽃줌마 모놀로그 “What is your true colors?”는 앞으로 남은 23차시의 시간동안 참여자 개인의 삶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자화상 그리기, 퍼포먼스, 희곡 낭독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다듬어 간다. 그리고 11월 3일 그 결실로 참여자들과 함께 만든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

* 문화예술단체 ‘문화집단 열혈지구’는 2018년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018>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4월 19일부터 11월 3일까지 문화예술 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한다.


 

곽주영(9기 모담지기)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현재 경영정보시스템을 배우고 있다. 금융기관에 적을 두었다가 또 지금은 박물관에서 일을 한다. 가끔씩 인생을 엇박자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학문 사이에서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세워가는 것, 어긋난 박자 속에서 제 고유의 선율을 만들어 가는 것, 속도는 다르지만 정 방향으로 향해가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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