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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창의예술학교-달할매학교
오래된 것들
월산동-달뫼마을 순돌이네 작은책방에서 만난 할매들의 새로운 시작
임우정_모담지기
▲활짝 핀 꽃처럼 고운 어르신들이다.
양력 5월 21일은 24절기 중 소만(小滿)으로 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고,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고 식물이 성장하는 시기로 이 무렵 모내기 준비에 바빠지는 시기이다.(출처 다음백과)
소만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23일 남구 월산동-달뫼마을을 찾았다. 소만을 맞아 우후죽순으로 자라난 죽순으로 마을 어르신들과 나물을 함께 만들고 점심을 먹는 달.할.매(달뫼마을 할매들의 인생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절기답게 태양은 아직 오전인데도 뜨겁게 공기를 데우기 시작했고 달할매들이 활동하는 순돌이네 작은책방은 조용하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 할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가꾼 꽃과 서투르지만 정성스레 눌러 쓴 글씨와 그림이 눈에 띈다.
잠시 할매들이 가꾼 꽃화분도 구경하고 할매들의 작품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하나 둘 동네 마실 나오듯 할매들이 책방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커피잔 한가득 손수 짠 들기름을 소중히 담아 오신다.
오랜 세월 몸에 밴 버릇을 뒤로하고 할매들 각자의 시간에 맞춰 하나 둘 책방에 들어선다. 시원한 매실차는 웬일인지 오늘은 인기가 없다. 믹스코피가 취향이거나 허브차를 찾는 할매들이다. 매일 집 앞에서,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이지만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앞 새로 생긴 보건소에 가서 침을 맞고 운동을 하는 그냥 사는, 살아온 이야기들. 지난주에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5.18민주항쟁 때의 생생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했다. 오늘은 죽순과 머웃대 요리법이다.
음료 취향처럼 다양한 요리법이 등장한다. 사용하는 재료는 같은데 삶을 때 소금을 넣는지 안 넣는지, 소금을 끓기 전에 넣는지 후에 넣는지, 소금의 양은 얼마나, 들깨가루는, 들기름이냐 참기름이냐, 통깨와 미원까지. 오랜 세월 할매들이 익혀온 최고의 비법이 쏟아져 나온다.
▲머웃대를 벗기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오래된 것들. 할매들의 이야기와 요리법은 오래된 것들이다. 처음이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고 또 익숙해 대수롭지 않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너무나 당연한 것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와 닮아있다.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발현되는 문화.
새로운 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자리 잡지 못하면 문화가 되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하지만 현대의 문화는 오래되기 보다는 빠르게 새것을 찾아가기 바쁘다. 최신 트렌드, 얼리 어답터, 신조어 그리고 다양한 줄임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새로운 것을 찾기 바쁜 문화 속에서 나이 드는 것은 슬픈 일이어서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 노력한다. 마치 오래된 것들은 유행에 뒤처졌고 필요 없다는 듯이. 하지만 나이 들었다고 해서 뒤처지거나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그것이 최신 유행이 되기도 한다. 90년대 음악이나 가수가 다시 유행하고, 빈티지라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유리잔이나 소품들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들깨가루가 기본이 되는 죽순과 머윗대는 아무리 오랜 세월 먹어왔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래됨은 오래됨으로 다시 가치를 찾는다. 24절기니 소만이니 하는 것들도 오래된 것들이다.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만을 지나면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한다는 오래된 계절감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래된 삶의 지혜가, 농경문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여전히 유효하고 생생한 살아있는 지식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것들의 지식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달할매들은 지금 이곳에서 생전 처음 접하는 ‘문화예술’을 만난다. 그림을 그리고 소풍도 다니고, 사진을 많이 찍어줘서 좋고, 함께 꽃도 가꾸고 매주 점심 한 끼를 함께하며 현재를 누구보다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달할매들이 가진 소중한 오래된 것들과 문화예술교육이 만나 만들게 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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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정(9기 모담지기) 미술교육을 전공하였고 여전히 미술을 사랑하며, 생활 속에서 계속 예술과 함께 하며 살고 싶다. 나이 든 고양이와 함께 나이 들고 있고, 돌고래가 살기 좋은 환경을 꿈꾼다.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면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통해 궁핍함을 잊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