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호] 이밥의 꽃, 오월의 어머니를 감싸안다 <어른동화: 오월장미>_선단비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8-07-03 조회수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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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역특성화 지원사업

이밥의 꽃, 오월의 어머니를 감싸 안다

<아트플랫폼 오르세 - ‘어른동화 : 오월장미’>

 

선단비_9기 모담지기

 

 이팝(이밥)나무엔 전설이 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드릴 쌀밥을 지을 적, 간을 보기 위해 밥을 한 움큼 떠먹다 시어머니에게 발각되고 만다. 억울하게 쫓겨난 며느리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마는데 세월이 흐른 후 그 자리엔 쌀 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가랑비가 제법 내리던 11일. 옛 구 도청 3층에서는 이 전설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머니들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던 차였다.

 

 오늘 모인 그들은 조금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모두 5.18을 겪어 온 ‘오월어머니들’로 그 당시 현장을 지켜왔거나 깊은 연관이 있던 분들이다. 저마다 그날에 대한 아픔을 지니고 삶을 영위해 온 그녀들. 이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보듬어 줄 순 없을까?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는 ‘아트플랫폼 오르세’는 어머니들을 위해 <어른동화 '오월장미'>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종이를 직접 접어보고 있다.

 

접다 보면 삐뚤어져븐디? 괜찮어, 괜찮어!

이번 수업은 이야기의 주인공, 이팝나무를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얇은 한지 두 장을 겹쳐 아코디언 형식으로 한 줄이 될 때까지 접는다. 다시 가운데를 기준으로 한 번 더 접고 접힌 부분은 가위로 오려낸다. 분리된 종이들을 다시 포갠 후 스테이플러로  중심을 연결하고 끄트머리를 손톱모양처럼 다듬어준다. 굳이 둥글게 만들지 않아도 좋다. 뾰족하든 직각이든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주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종이를 모두 활짝 피면 이밥의 흰 쌀 꽃을 만날 수 있다. 

 

 완성된 꽃은 벽에 설치된 큰 나뭇가지에 부착하는데, 빈 공간을 전부 채우기 위해선 다량의 꽃을 만들어야 한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도 어머니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신다. 그러다 그만 종이가 서로 비뚤어진 채로 접혀졌는지 한 어머니가 ‘접다 보면 틀어져븐디? 삐뚤어져븐디?’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어머니가 한 수 거두신다. “괜찮어, 괜찮어. 그럴 수도 있제!”

  

▲이팝나무의 꽃을 직접 만들어 보시는 어머니들

 

빛나던 그날의 목격자들, 빛바랜 오늘날의 기억들

 투박한 손끝에서 꽃이 만개할 즈음, 이팝나무와 그녀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팝나무는 오월어머니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번 수업은 그녀들에게도 여러모로 의미가 담긴 시간이다. 각자의 처지는 다르지만 슬픈 사연이란 공통분모를 지닌 둘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둘은 닮은 구석도 있다. 하얀 솜뭉치 같은 꽃은 마치 오월의 그날 어머니들이 청년들에게 쥐어주던 흰 주먹밥과도 같다. 

 

 그렇다. 실은 우리 어머니들도 먼발치에서만 5.18을 바라보지 않았다. 필요한 물자를 기꺼이 마련해주고 계엄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겨주기도 했다. 아울러 옆에서 거들어주던 아버지, 내 가족처럼 더 보태주려 하던 이웃들까지. 보이지 않은 손길들이 모여 광주 민주화는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허나 오늘날의 우린 그들을 잘 모른다. 교과서에서나 짤막하게 짚고 넘어갈 뿐, 옆에서 함께 일궈내던 민주주의를 알지도 듣지도 못한 채 지나오고 있다. 이번엔 우리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대로 흘려보낼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매듭짓지 못한 그날을 이어줄 때가 아닐까?

  

▲ 아코디언 방식으로 종이 접는 어머니. 행여 삐뚤어질까 한껏 집중하며 접고 계신다.

 

이후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트플랫폼 오르세’ 채유리 담당자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트플랫폼 오르세’ 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문화예술기획과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 있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비추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기차역이 미술관이 된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생각의 전환이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오르세는 문화가 소통하고 교차하는 플랫폼적인 역할을 하는 매개자이자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 뱅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동화 ‘오월장미’>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광주하면 5·18이 떠오르고, 오일팔하면 심각하고 숙연해지는 게 일반적인 통념인데요, 이를 조금 다르게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흥미롭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다가 ‘개인의 자전적 동화로 풀어내면 인간적인 측면에서 스토리를 전개해나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마음이 아프고 유족들을 애도하고 싶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정치적으로 이용로 이용하거나 왜곡해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적 진실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주입식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동화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했습니다. 

  

▲ 반복되는 작업 속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어머니들

 

대부분의 대상자가 여성이란 점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오르세 멤버들이 여성으로 이루어져있고 제가 평소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오월어머니집의 여성들을 대상자로 정했습니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 등의 일환으로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였던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고 이와 같은 맥락으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도 여성으로서 감내하며 살아와야 했던 부분들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바라는 기대효과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현재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바라는 것은 도청복원입니다. 현재 2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구 도청 현장에서 농성을 하러 나오십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시위는 굉장히 난폭하고 투쟁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시위의 형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시위의 형태도 비폭력 평화시위의 형태로 진행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자생적으로 차오르는 긍정적 내적 에너지를 통해 표정으로 몸짓으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 완성된 이팝나무의 모습. 겨울의 눈꽃처럼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한 이를 예술로서 표현하려고도 합니다. 구도청 내벽과 외면에 어머니들이 직접 접은 핑크색 장미를 공공미술로 설치하여 이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것입니다. 핑크는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하는 색채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희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 일부러 핑크색 티를 맞춰서 입고 갑니다. 또한 어머님들이 접는 장미꽃도 핑크입니다. 핑크색 장미를 접으면서 두뇌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과거에 남편과 자녀들이 민중항쟁을 위해 투쟁한 구 도청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날에는 어머니들이 대신하여 투쟁하며 강인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트라우마의 피해자에서 이제는 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감싸는 치료자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오월장미’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오월어머니집 회원 분들이 저희 교육을 너무 좋아해주시고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서로를 북돋아주며 치유해 줄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문화예술교육으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도청 복원을 지지하는 플랜카드. 옛 도청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비의 날개 짓은 부드럽다.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잔혹 사에 내 가족 내 이웃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던 오월의 어머니들. 오늘날엔 이념의 갈등에 휩쓸려 또 한 번 눈시울을 붉혀야만 했다. 가슴 속 상처는 아직 아물었다고 확답할 수 없는데 야속한 시간은 사건을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허나 그녀들도 더 이상 그날의 목격자로 남지 않으려 한다. 끝나지 않은 5.18을 바로잡기 위해 매주 구 도청 앞에서 도청복원을 외치고 있다. 과거에 아버지, 아들이 시위에 나섰던 일을 어머니가 도맡아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 한 편 아려오지만 여성의 부드러운 힘, 그리고 강한 힘으로 광주의 오월을 다시 써보려 한다. 


 5·18은 지났지만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하지만 그들을 잊는다면 앞으로의 우리도 위태로울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날의 광주, 지금의 광주를 지켜 온 어머니들을 기억해주길. 그녀들에게도 이밥의 꽃처럼 그날의 봄이 만개하도록 감싸 안아주길.

 

 

  

선단비(9기 모담지기)                                                                                                                          늘 그렇듯 새로운 시작은 낯섦과 설렘이 공존한다. 동구에서 재봉틀과 함께 청춘을 엮고 있던 나는 기자단이라는 새 옷을 걸치고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결심한다. 예술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에서는 문외한적인 모습을 보였던 나 자신에게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툴고 어수룩한 솜씨지만 광주 시민들과 문화예술의 연결 고리가 되기 위해 모담지기에 지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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