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호] 엉망진창으로 시작해도 괜찮아_이하영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05-08 조회수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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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배움터

엉망진창으로 시작해도 괜찮아
문화예술교육연구소일상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통신원 이하영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갔던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봤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한참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비싼 악기들로 채워진 콘서트홀, 진지한 표정의 청중들, 왠지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오케스트라에 선뜻 다가서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약 비싸고 배우기 힘든 악기가 아닌 우리 주위에 있는 물건들이 악기가 되어 무대 위에 오른다면 어떨까? 일상에서 쉽게 보고 구할 수 있는 도구가 악기가 되어 누구나 연주자가 될 수 있다면? 아마 가볍고 부담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악기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연주자가 될 수 있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3기 첫 수업이 열리는 날. 스스로를 ‘엉망진창’이라 말하는 오케스트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감을 안고 광산구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름표

 수업이 열리는 공연장은 이른 시간부터 아이들 목소리로 가득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찾아온 어린 친구들부터 이미 아는 사이인 듯 들어오자마자 서로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까지.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으로 이뤄진 ‘엉망진창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오늘 뭐 할까?’라고 물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직은 어색한 듯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 보기도 했다. 모두들 떨리면서도 기대되는 눈치였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의 주진옥 선생님께서 인사로 수업의 시작을 알리자,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은 문화예술 교육의 한 방법으로써 음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결합하여 통합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개발해 보급하는 단체입니다. 단순히 기능 위주의 교육이 아닌 창의적이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를 지역 사회와 함께 나누고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음악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첫 시간은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는 시간으로 부모님들이 함께 자리했다. 프로그램의 취지와 앞으로 진행될 수업내용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1,2기의 활동 내용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 속에는 생수통과 파이프, 깡통과 페트병 등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 악기가 되어 아이들 손에 연주되고 있었다.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1,2기의 활동사진

 “어렵고 비싸다.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한다.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일반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정반대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악기를 한 번 연주해 보고 싶은데, 꼭 비싼 악기로만 해야 할까? 오랜 시간 테크닉을 연마하는 게 아니라, 쉽고 편안하게 친구들하고 즐기며 연주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계기가 되어 기존 오케스트라가 가진 고정관념과 완전히 반대되는 오케스트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비싸지 않은 우리 주변, 일상의 오브제를 가지고 악기를 만들고 친구들하고 연주를 해보자.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현악기, 타악기, 관악기를 이해하고 체험하고 이를 통해 악기가 소리 나는 원리를 이해하고, 이 소리를 우리만의 악기로 재해석해 악기를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1회성의 체험 형식 수업도 아니고 만들기 수업도 아닙니다. 연주 방법을 배우러 오는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악기를 이해하고 직접 체험하고 어떤 악기를 만들지 상상하고 재료 탐색도 해보고, 상상한 악기를 만들다 실패도 해보고, 내가 만든 악기로 연주도 직접하고 공연도 하게 됩니다.”
 프로그램 설명이 끝나고 간식을 먹은 뒤 공연장에는 아이들만 남아 수업이 계속됐다. 부모님이 떠나고 ‘엄마가 가라고 해서 온 게 아니라 내가 오고 싶어서 온 사람 손!’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 이름과 학년을 소개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와 그림으로 각자의 이름표를 꾸몄다. 버스킹 공연에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를 알릴 깃발도 제작했다. 다양한 악기 그림을 오려 깃발에 붙이고, 색을 칠해 깃발을 완성했다. 앞으로 있을 여러 차례의 공연과 버스킹을 함께할 깃발이었다.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름표와 깃발을 꾸미는 모습

 “올해부터는 교육과 발표 형식의 공연에서 끝나지 않고 결과물들을 지역사회와 많이 공유할 예정입니다. 송정역 시장에서 상인들과 함께하는 버스킹, 노인복지회관에서 장구, 꽹과리를 배우시는 어르신들과 함께하거나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하시는 선생님들과도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이고요. 그냥 공연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이거 가지고 뭐 해요? 들고 다니면서 악기 연주해요?”라고 물으며 깃발을 휘두르는 아이들에게서 벌써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프로그램 참여라는 금구초 6학년 유수인 학생은 “직접 악기를 만들고 간식 먹는 시간도 기다려지지만,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 한 경험이 가장 즐거웠다며 앞으로 버스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양예서 친구와 함께 ‘엉망진창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다. 열심히 깃발을 꾸미는 모습에 두 친구가 만들 악기와 음악 소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스스로 장식한 깃발을 든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단원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내 감정도 달라집니다. 이왕이면 많은 친구들이 음악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듣고 즐겼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보통 랩이나 대중가요 등 음악을 듣는 것만 듣고, 음악으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악기는 연주하는 것, 듣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음악을 통해 보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즐기려면 악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악기를 이해할수록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연주법을 궁금해하게 되거든요. 악기를 이해하다 보면 연주를 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엉망진창 오케스트라’의 경우 내가 만든 악기를 가지고 직접 연주하기 때문에 악기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커요. 악기와 친해지고 음악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음악을 즐기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주진옥 선생님의 한마디는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했다. 실제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시작이 ‘엉망진창’이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고물상에 가서 재료를 고르고, 악기를 직접 제작해 몇 차례의 버스킹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아이들 손으로 만든 악기들이 어떤 소리를 낼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기들이 만들어낼 연주 소리를 기대해본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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