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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
나에게로 다가서는 길, 경자씨들의 발걸음
경자씨와 재봉틀Ⅵ ‘원하는 STEP’
통신원 정연이
“사는 게 힘들면 어떻게 하는 줄 알아? 그냥 계속 헤엄쳐!”
- 니모를 찾아서 ‘도리’ -
인간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 흐르듯 남의 생각과 패턴에 맞추어 살아가게 되고 존재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 이러한 경험을 무수히 많이 느껴본 이들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들이 아닐까 싶다. 청년 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횟수보다 이제는 ‘○○엄마’, ‘○○아줌마’, ‘○○어르신’ 등 다양한 형태의 이름으로 불리는 횟수가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새롭게 불리는 그 이름이 당신의 존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는 2014년부터 생애 전환점을 맞은 50~6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경자씨와 재봉틀’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어느덧 6년차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원하는 Step’이라는 제목으로 신발을 매개체로 하는 프로그램 신청을 받았다. 총 10회에 걸쳐 14명의 경자씨가 함께 걸음을 걸었다. 경자씨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마지막으로 경자씨의 원스텝, 수료식 및 패션쇼로 마무리한다.
▲ 경자씨의 신발론 ▲‘눈이 부시게’ 전
: 자신의 발과 신고 가고 싶은 신발을 그렸다.
패션쇼 장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경자씨들의 그림이었다. 일명 ‘신발론’이다. 경자씨들의 발 그림에서 지나간 세월 속 공허함과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진 것 같다. 내 몸 중 가장 고단하고 지루한 발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 뜻깊었다는 경자씨의 말이 떠오른다. 10회의 활동 중 그들의 걸음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소금 테라피를 통해 생각해보는 활동이 있다. 나도 내발이 가고자 하는 곳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또 경자씨들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줄 신발을 그렸다. 그 신발 그림을 바탕으로 신발 수제 장인을 만나 신발 만들기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금껏 진정 나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용기와 열정을 누군가에게 양보해야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경자씨들. 그 신발을 신고 패션쇼에서 워킹도 했다.
▲ ‘경자씨와 재봉틀’ 6기 경자씨들 ▲ 탭댄스 공연
곧이어 광주 탭댄스 김호준 선생님께 배운 탭댄스를 공연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탭댄스를 직접 배워보는 기회는 흔하지 않아 다들 만족해하셨다고 한다. 너무 즐겁게 배우셨는지 공연 내내 쑥스러움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자씨들의 당당한 스텝이 자신감 넘쳐보였고 건강해보였다.
경자씨의 발걸음
경자씨들은 10회의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때쯤, 양림동 서서평 길 투어도 다녀오셨다. ‘푸른 눈을 가진 조선인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서서평 선교사는 한평생을 조선인을 위해 봉사하다 삶을 마감하셨다. 저마다 인생을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모두 달랐을 경자씨들이지만 길을 걷는 내내 모두 같은 마음으로 걸었을 것 같다. 서서평 선교사처럼 경자씨들도 오늘 날 어머니로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셨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신중년 여성의 삶, ‘나’를 위한 삶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홀로 서서 마음껏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우리 어머니들의 힘이 컸을 것이다.
▲ 풍선을 날리는 경자씨들
다음으로 경자씨들의 워킹을 감상할 시간이다. 이 순간을 위해 가지고 있던 무대울렁증도 훌훌 털어버릴 만큼 연습을 많이 하셨을 텐데 워킹이 시작되자 나 또한 긴장되었다. 짧은 구간이지만 당당한 그녀들의 워킹. 인생은 그냥 헤엄쳐 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경자씨와 재봉틀이 주는 감동은 남다른 것 같다. 프로그램을 6년간 유지하는 것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지만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유를 서로 나누며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사소한 것들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열심히 달려온 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는 힘은 참 대단하다.
김선자 ‘하운’ 강덕순 ‘덕순’ 조연수 ‘조랑말’
최난희 ‘한송이’ 임오례 ‘나아름’ 김원랑 ‘핑크’
나경숙 ‘현서’ 박수희 ‘그대는 내 사랑’ 배윤정 ‘온정’
조재희 ‘엘라’ 김한이 ‘바이올렛’ 박덕균 ‘설난’
윤영남 ‘영남
▲‘경자씨’ 패션쇼
경자씨와 재봉틀 꼭 유지해주세요!
수료식 전 간단하게 참여 소감을 모든 경자씨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경자씨들은 이 프로그램이 반드시 유지가 되어야하며 더 많은 홍보와 대상자들을 바라셨다. 다시 만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그들의 아쉬운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많은 경자씨들의 소감 중 몇 가지만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매주 금요일 집에서 나올 때 설레는 마음으로 나왔다.
-나경숙 ‘현서’-
“중년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비상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모두에게 감사하다.”
-최난희 ‘한송이’-
“ 프로젝트는 너무 잘 기획되었다.
영혼과 육체와 그리고 마음까지 이끄는 스텝이
기억에 남고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참여할 수 있을까.”
-박수희 ‘그대는 내 사랑’-
“늘 누군가가 저를 찾아왔지 제가 찾아간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신발을 통해서 프로그램 하나하나
너무나 정성을 담아 진행하는 것에 감동받았다.”
-김한이 ‘바이올렛’-
“경자씨 다니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어요.
제 마음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풀 수 있었고
스텝 한 분 한 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조재희 ‘엘라’-
▲ 6기 ‘경자씨와 재봉틀’ 수료식 단체사진
광주문화재단 이묘숙 사무처장은 “광주문화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특별한 층위를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회에 변화를 키워내고 있는 어머니이자 세상의 모태를 가지고 있는 우리 경자씨들에게도 응원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저 또한 문화재단의 가족으로서 너무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경자씨들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고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현장에서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경자씨들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처음 시작하는 설렘과 마무리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경자씨들은 앞으로의 인생을 또 나아가야한다. 그래야 다음 걸음을 디딜 수 있다. 살면서 용기가 필요한 사자가 되어야하고 열정을 누군가에게 주어야하는 때가 있다. 경자씨들은 이미 한 발자국 움직였다. 경자씨들의 간절한 소망대로 프로그램이 유지되길 바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바란다. 나는 그들의 힘찬 헤엄에 박수를 보낸다.
| 정연이 (10기 통신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깊이 빠져들고 싶어 문화예술기획으로 한 번 더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발로 뛰어 문화예술의 현장과 친해지고 진실한 마음과 생각으로 글을 쓰겠다. 또한 모양새가 그리 곱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취재하는 통신원이 되겠다. 나는 내가 더욱이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의미 있는 삶은 온전히 나만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