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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사 인턴쉽
우리에게 필요한 ‘선생님’, 우리를 기다리는 ‘문화예술교육사’
농성문화의 집 <오밀조밀 생각대로 오브제 팩토리>
통신원 이하영
“선생님! 저 이거 잘못 끼웠어요!”
“선생님! 저는 방학숙제로 학교 가져가게 두 개 만들면 안 돼요?”
“선생님! 이 색깔 너무 연해서 안 보여요!”
“선생님! 저 이쪽 삐져나온 거 자르고 싶어요!”
“선생님!”
토요일 오후 농성문화의집은 ‘선생님’을 찾는 소리로 시끄럽다. 어린이 환경미술 프로그램 ‘오밀조밀 생각대로 오브제 팩토리’ 수업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옷, 현수막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는 미술 프로그램 ‘오밀조밀 생각대로 오브제 팩토리’의 수업은 동화책 <플라스틱 섬>을 함께 읽으며 시작됐다.
▲ 함께 책을 읽고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플라스틱에 몸이 끼어 제대로 자라지 못한 거북이, 몸에 타이어가 끼어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된 바다사자, 아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들이 강과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에 커다란 플라스틱 섬이 생기고, 물고기와 새들이 죽어간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버려진 것들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못 입는 청바지를 활용해 벽을 장식할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드는 시간, 선생님과 아이들이 돌아가며 청바지에 담긴 이야기와 추억을 나눈다.
“제가 가져온 청바지는 사촌 형아가 커가지고, 작아져서 못 입게 된 바지예요.”
“이거는 제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바지인데 빵꾸가 나서 못 입게 됐어요.”
“이거는 우리 삼촌 청바지예요. 삼촌이 살이 빠져서 이제 못 입게 됐어요!”
교실에서 제일 큰 청바지의 등장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오늘의 수업 목표는 각자 가져온 청바지를 오리고 수틀에 끼운 뒤 그림을 그려 장식하기. 청바지의 어느 부분을 오려야 하는지부터 어떤 색으로 그림을 칠할 건지, 어느 방향으로 청바지를 수틀에 끼워 넣어야 하는지 선생님을 찾는 소리로 교실이 시끄럽다.
▲ 청바지에 담긴 추억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아이들
하나둘 청바지가 작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완성된 ‘청바지 오브제’를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설명하는 시간도 가진다. “청바지 위에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만은 잃지 말자’라고 적었어요. 벽에 걸어 놓을 거니까, 자주 보려고요.” “이 작품의 제목은 자연이고, ‘쓰레기 말고 자연을 사랑하자고 썼어요” 한 사람씩 작품 설명을 마치자 “청바지라고 생각 못 하겠어요. 그쵸? 이 작품을 보면 쓰레기를 쉽게 버릴 수 없겠는데요?”라는 선생님의 말이 뒤를 잇는다. 선생님의 칭찬에 아이들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이러한 예술 교육이, 수업을 만들고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못 입게 된 청바지를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아이들
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해 직접 작품을 만들며 환경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수업 ‘오밀조밀 생각대로 오브제 팩토리’. 문화예술교육사 인턴쉽 지원 사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 중인 문화예술교육사 김건희 선생님을 만나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과 문화예술 교육사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이트에서는 문화예술교육사를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기획, 진행, 분석, 평가 및 교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김건희 선생님은 아직 문화예술교육사를 뭐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한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수업을 홍보하고, 참여자들을 모집해 수업을 운영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순간순간이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도 큰 것 같아요. 한국화를 전공하고 미술 학원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문화예술교육사 수업을 받으면서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문화예술교육사가 뭘까? 뭐 하는 사람일까?’ 순간순간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수업 기회를 좀 더 많이 접해보고 경험해 봐야 저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수업 시간 ‘선생님’을 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뿌듯해하던 아이들. 문화예술교육 ‘선생님’이 필요한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 아이들이 완성한 예술작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 보니 ‘문화예술교육사’하면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을 주로 떠올리시는데 사실 문화예술교육사는 꼭 어린이 교육에 한정된 전문가가 아니에요. 문화예술 교육은 어느 연령에게나 필요하잖아요. 청소년, 청년, 어르신, 또는 가족들 역시 문화예술 교육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환경’을 주제로 택한 이유도 좀 더 다양한 연령과 풀어나갈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다양한 연령,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김건희 선생님은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 이를 통해 나와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힘이다. 김건희 선생님의 말대로 이러한 문화예술 교육은 아이들뿐만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한 교육일지도 모른다.
▲ 예술을 통해 ‘환경’을 생각해보는 오밀조밀 생각대로 오브제 팩토리
“요즘 문화예술교육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자격증 제도에 허점이 많다 말이 많은데 한 명의 전문 인력을 키운다는 게 무척 힘든 일이잖아요. 문화예술교육사들이 가진 ‘전문성’은 현장에서 경력이 쌓여야 빛을 발할 수 있는 건데, 자격증을 받았다고 해서 ‘나 전문 인력이야!’ 이렇게 자신을 뽐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배운 걸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는 게 가장 절실한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즐겁게 프로그램의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운영하며 많은 걸 배우고 있거든요. ‘선생님들을 믿고 기회를 주는 것’, 모든 문화예술교육사 선생님들께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간다. 문화예술 교육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사’가 존재한다. 준비된 문화예술교육사 들이 그동안 교육받은 지식을 실험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현장이 많아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통해 ‘나’와 ‘세상’을 알아갈 기회를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화예술교육사에게 준 기회는 우리 모두에게 또 다른 기회로 돌아올 것이다. “선생님!” 농성문화의집을 가득 채웠던 선생님을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생님’은 이미 우리 곁에서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