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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예술에 대한 마음이 자라나는 콩나물시루
책 문화공간 봄 ‘무늬만 책, 일상을 기록하다’
통신원 이하영
“나에게 문화예술은? 깊이 생각해봤어요. 콩나물시루입니다. 구멍 뚫린 시루에서 흐르는 물에도 잘 자라나는 콩나물처럼 사람들에게도 문화가 스며들어 잘 자라기를요.” ‘책문화공간 봄’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무늬만 책, 일상을 기록하다’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계시는 위명화 선생님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남구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 ‘책문화공간 봄’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도서관이 있을까 싶은 상가건물, 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부터 어머니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우나 옆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누구나 언제든 들어와도 괜찮다는 환영인사처럼 느껴진다. 공간을 가로질러 길게 놓인 테이블에서는 자수 수업이 한창이다. 꽃과 집, 글귀와 가족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천 위에 새겨진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연대기를 만들고 수를 놓아 자서전을 완성한다.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취향, 내가 행복했던 시절, 오롯이 ‘내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 자수를 놓고 계시는 프로그램 참여자분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혼이 나오고 아이가 나오면서 가족 이야기로 나 자신의 이야기는 묻혀버리더라고요. 이제 그거 말고 진짜 ‘나의 이야기’. 기왕이면 나의 어릴 적, 결혼하기 전의 젊은 시절,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표현해보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어요.”
자서전 쓰기, 구술생애사, 나만의 책 만들기 등 최근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비슷한 프로그램과 달리 ‘책문화공간 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수로 자신을 표현하기 전에 연대기를 작성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노트를 만든다.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태몽이나 아이들의 태몽을 한국화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수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조그만 의자에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 나를 표현하는 문장들을 새겨 넣기도 한다. 이처럼 참여자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다.
▲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모습
“저도 미술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쳐 봤는데, 부모가 관심이 있지 않으면 아이들은 예체능을 시작하지 않더라고요. 부모가 예술을 모르는데 어떻게 아이들한테 시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문화 소외 계층이 주부이기도 하거든요. 어르신분들은 노인 대상의 프로그램이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예술을 접하죠. 유치원생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엄마들은 어떻게 보면 피카소하고 고흐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되겠다. 예술이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 그런 의미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과정을 세 개의 챕터로 구성해봤죠. 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에는 말과 글로 표현하고 그다음에는 한국화로 표현했어요. 그다음에는 자수로 나를 표현하고. 자수 수업이 끝나면 서각 수업이 진행이 될 예정이에요. 조그마한 의자에 내 인생의 한 줄을 조각해보는 겁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위명화 선생님은 특히 ‘예술’을 통한 삶의 경험, 교육을 강조한다.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돌아보고 변화하는 사람들, 삶을 보다 풍요롭게 가꿔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자녀들은 물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는 개인적인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도 예정되어 있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전시된다. 예술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그저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11월 22일, 동구에 위치한 ‘예술공간집’에서 열릴 전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자수로 완성한 내 이야기가 담긴 나만의 책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도서관, 자수를 놓으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크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문화 공간 봄은 주민들에게 어떤 공간이고, 또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길 꿈꾸고 있을까?
“사람들이 생각할 때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너무 한정을 짓더라고요. 저희는 작은 도서관이잖아요. 공공 도서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섬세하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단순히 대출하고 반납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제 기분이 어떤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물어보기도 하고, 와서 책은 물론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 주민 속으로 들어가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 6년째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름만 사랑방이 아니라 진짜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자식 나오길 기다리면서 책 읽는 분들도 계시고. 중학생 아이들이 오락실이나 노래방 가는 게 아니라 여기 와서 쉬었다가고. 그럴 때 이 공간이 참 쓸모 있는 공간이구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이구나. 우리도 일본처럼 50미터만 가면 작은 도서관이 나올 정도로 도서관이 많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책문화공간 봄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이 되면 도시 곳곳에서 책과 관련된 행사가 열린다. 행사장에는 ‘도서관이 나라를 만든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을,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을 가보라’와 같이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위명화 선생님의 말처럼 50미터만 가면 새로운 도서관이 나오고, 이사를 결정할 때 도서관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부터 따져보는 나라가 된다면 어떨까? 그 도서관이 ‘책문화공간 봄’과 같이 사랑방 같은 도서관,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문화 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이를 통해 삶과 세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콩나물시루’로 가득한 세상을 꿈꿔본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