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호] 꽃 같은 인생의 파노라마_송진주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11-08 조회수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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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인생의 파노라마

푸른연극마을 <내 인생의 드라마를 펼쳐보이리>

통신원 송진주

 

 조용히 눈을 감고서 옛 기억을 더듬다 보면, 영화 속 트레일러처럼 무수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행복했던 그 당시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고달픈 현실의 기억이 스치면 억장이 무너지는 듯 그 아픈 상처의 고통이 다시금 전해진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간 겪으면서 내게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일일이 이야기하려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 한 살 먹으면 먹을수록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내가 사실은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은 온갖 풍파 속에서도 견뎌내고 끝내 찬란한 인생의 결말로 마무리 짓는 것처럼, 오늘도 아름다운 내 인생의 드라마 방영을 시작한다.

  

▲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경정하면서 무대에 임하는 그녀들        ▲ 다른 이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같이 듣는 그녀들


 지난 10월의 어느 날, 푸른연극마을 ‘씨어터 연바람’의 <내 인생의 드라마를 펼쳐보이리>에서는 일곱 가지 색깔을 지닌 중년 여성 배우들의 인생을 무대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다소 낯선 듯 익숙한 그녀들의 이야기. 4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꽃다운 여인들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마음 속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기 시작했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주인공의 삶이 실제로 경험한 것같이 몰입되는 것처럼, 이는 다른 삶의 모습 같지만 내가 예전에 겪었던, 또는 앞으로 겪을 생각과 감정을 담았다.


▲ 자신의  인생 드라마를 펼칠 무대에 서있는 그녀들


 이혜숙, 이은아, 주옥, 이명순, 강경숙, 김소연, 전현숙. 온전히 내 이름으로 불리며 무대에서 선보이는 나의 이야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J(김현우, 오새희)의 매끄러운 진행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해보는 콘셉트로 연출하였다. 7명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기하지만, 사실 실제의 모습이기에 무대 위에서 몰입도가 높았다. 내 이야기를 직접 내 입으로 내뱉고, 대사를 읽다가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밀려올 때는 다른 여인들이 대신해서 대사를 낭독해주었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들이기에,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 서로를 안으며 위로하는 그녀들

    
▲ 전현숙 작가가 각자의 그녀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의 일원이나 연인, 친구 등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인생의 중심에서 항상 가까이 해왔던 누군가가 어느 순간 사라졌을 때 그 절망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지만 평범한 듯 너무나 특별한 이야기로 공감을 갖게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거나, 친구 남편의 죽음을 마주할 때, 사랑하는 이의 배신으로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을 때 등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에 겪는 이 모든 감정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를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나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내미는 따스한 위로의 손짓이기에 그들의 인생 드라마는 너무나 특별하다.  

 

 무대 위에서는 보통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새로운 나의 모습을 선보인다. 그렇기에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 내 모습을 오롯이 드러낸다는 것은 벌거벗은 듯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들 역시도 사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그 과정이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초면에 모르는 남남이 만나서 입 밖으로 이야기하기 힘든 나의 가장 깊은 상처를 굳이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크나큰 도전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큰 슬픔의 상처는 가질 수 있기에, 그 아픔이 단지 다른 사람의 상처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나의 슬픔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 그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언니, 동생이 되었다.    

 

▲ <내인생의 드라마를 펼쳐보이리>의 이당금 기획자


 <내 인생의 드라마를 펼쳐보이리>를 진행한 이당금 기획자는 본래 배우로서 자신을 표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다른 중년의 여성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를 준비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전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인생을 돌아봐야할 시기인데, 보통 주변에서는 자신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할 기회가 딱히 없어요. 긴 세월동안 무대에 서면서 연극적인 요소가 가장 깊은 감정을 풀어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로써 약 5개월간 20차시에 걸쳐 드라마 형식을 통해 감정적 치유도 더불어 이뤄지면서, 계절이 변하듯 참여하는 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니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만나는 시간을 예술적인 형태로 만나게 해주면서, 모두 이야기 속 나의 모습, 엄마의 모습, 친구의 모습,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잘 버물려진 것 같습니다.’


▲ 공연 후 주인공인 그녀들 각자의 소개를 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중년여성들을 위한 자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간 가져온 상처의 아픔을 잊기 위해, 이런 저런 활동을 찾다가,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그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처음엔 회의적이고 적대감이 생겼지만, 차츰 글로써 나를 돌이켜보고 말로써 나를 보여주니 그 가운데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자기애도 생기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도 참으로 따뜻하게 바뀌었고, 공감과 소통 속에서 남과의 소통이 결국에 나와의 소통으로 이어졌다. 눈물로써 보낸 긴긴 세월을 이제는 다 같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내 인생의 무대. 그 이야기 속에서 어여쁜 한 떨기 꽃송이로 피어나기 위해 ‘인생 최고의 배우’로 무대를 마친 그녀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꽃 같은 내 인생, 지금껏 잘 살아온 내 삶에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 함께 연극을 준비해온 꽃같은 그녀들

 

송진주 (10기 통신원)
하늘과 땅 사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 이를 ‘문화’라고 쓰고 ‘인생’이라 읽는다. 우리는 매순간 깨달으며 배워나간다.
문화 또는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면서 재미나게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난 ‘유희하는 인간(Homo ludens), 송진주’로 살고자 한다.
나도 모른 사이에 문화와 함께 숨쉬고, 삶 속 깊이 스며들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로 인해 문화예술기획을 전공하며, 앞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이가 유희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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