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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제 및 허브사이트
목포로 떠나는 '낭만' 당일치기 여행기
제10기 통신원 문화예술현장 탐방
통신원 정연이
날씨가 더 쌀쌀해지기 전에 ‘2019 통신원제 및 허브사이트 운영사업’의 일환으로 제 10기 통신원들과 문화예술교육팀이 문화예술현장으로 목포를 탐방하고 왔다. 기사 제목을 보고 항구의 도시 목포에서 과연 ‘낭만’을 찾아볼 수 있을지 궁금해 할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목포는 상상 이상의 ‘낭만’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서산동 시화골목과 괜찮아마을, 그리고 근대역사문화공간까지 총 3곳을 다녀왔다. 목포가 잠시 모국회의원의 부동산 이슈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목포시와 목포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목포는 꾸준히 관광 도시로 도약을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 8월 목포의 구도심 지역은 이미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문화재청에 의해 선정됐다. 구도심은 문화와 역사가 한 공간에 있어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잠깐의 사회적 이슈로 관광객이 늘어나긴 했지만 실제 목포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단지 이슈몰이의 구경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자체와 시민들의 노력이 이들에게 목포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산동 시화마을 시화골목
▲ 인문도시 서산동 시화골목 표지판 ▲ 시화골목은 집집마다 벽에 시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시화골목 안에 환경미술관 ▲ 영화<1987> 촬영지 ‘연희네 슈퍼’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곳은 바로 서산동 ‘연희네슈퍼’ 근처의 예술인촌 ‘서산동 시화마을’의 시화골목이다. 첫 번째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본래 서산동은 목포 유달산 자락의 어촌마을이다. 이곳은 2015년부터 목포시 도시재생사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
하여 영화 <1897>의 촬영지이기도 한 ‘연희네슈퍼’가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다. 마을 이름처럼 시화(詩畫), 시와 그림이 존재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니며 구경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벽면에 시화마을 원주민들의 알록달록한 그림들과 시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한 비탈에 자리 잡으면서 갤러리와 작업실이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공간을 바보마당 즉, 바다가 보이는 마당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는 첫째 골목부터 셋째 골목까지 모두 거닐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골목길 사이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시와 그림을 더욱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대부분 낙후된 도시에 예술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을 골목길 살리기’와 같은 사업을 많이 생각할 것이다. 이곳 시화골목도 그런 사업 중 하나다. 다른 골목과 조금 다른 점은 이 마을의 역사이다. 일제 개항지 중 하나였던 이 지역은 일제시대의 흔적과 한국의 현대사가 관통하고 있다. 지역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 시인, 화가들이 뜻을 모아 시화골목을 조성하였다. 골목을 지나 보리마당이라는 언덕에서는 목포항과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이후 정유재란 때 108일 동안 주둔했던 섬 고하도(高下島)도 볼 수 있다.
목포 괜찮아마을
▲ ‘괜찮아마을’ 홍동우 대표 ▲ ‘괜찮아마을’ 1층에서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 괜찮아, 어차피 인생 반짝이야 ▲ 홍동우 대표와 제 10기 통신원 단체사진
입구에서부터 등장한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가 새겨진 심상치 않은 티셔츠. 두 번째 낭만을 느끼기 위해 방문한 곳은 ‘괜찮아마을’이다. 이곳은 50명의 청년들이 6주 동안 한 데 모여 사는 청년 공동체다.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싶은 성인들이 여행, 상담, 휴식, 상상력 강화, 작은 성공으로 자신감을 기르고 지역에서 살아간다. 지역의 빈 집은 청년에게 제공되며, 학교가 되기도 하고 공유하는 사무실이 되기도 한다. 지역의 인구 감소와 빈집 증가는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괜찮아마을’은 많은 청장년층이 떠난 목포의 구도심을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쉬고 배우고 상상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공간으로 활용해 지역에 젊은이들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누군가에게 6주로 끝나는 여정이 되기도 하고 6주가 6개월 1년, 2년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기도 한다.
요즘의 많은 청년들이 신조어인 ‘You Only Live Once(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다)’를 받아들이고 있다. 자칫하면 하고 싶은 대로,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무모한 구호처럼 들린다. 이러한 무모함과 ‘괜찮아마을’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홍동우 대표는 목포의 ‘괜찮아마을’이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이 시대의 유목민들이 목포에 모여 이곳에서 자신만의 목초지를 꾸민다면 무모함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세계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며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면 조금 무모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지만 청년의 눈높이에서 우리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목포근대역사관 2관 앞에서 최희자 해설사 선생님 ▲ 목포 거리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우리가 방문했던 세 번째 낭만의 공간이다. 서산동 시화마을에서부터 최희자 해설사께서 목포 관광에 도움을 주셨다. 최희자 선생님은 목포 관광이 더욱 활기가 넘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말씀해주셨다. 최근 주말드라마 ‘호텔델루나’의 촬영지로 관광객이 지난해에 비해 5배 증가했다고 한다. 미디어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목포개항 이후 일본인 권익보호를 위해 지은 구 목포 일본 영사관이 붉은 벽돌과 대리석 벽난로 등으로 조성되어 현재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1900년에 건립되어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1981년 사적 제 289호로 지정되어 근대역사의 중요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전쟁 당시 건물 벽에 총탄을 맞은 흔적들도 여럿 남아 있다. 인근에는 구 동양척식주식회사였던 목포근대역사관 2관과 일본인 자녀교육시설, 경동성당, 유곽 등 일제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으니 방문하여 찾아보길 바란다.
▲ 목포근대역사관 1관 앞에서 통신원 단체사진
목포는 항구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최희자 문화해설사께서 ‘목포는 항구다’를 외치게 하셨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문장은 가수 이난영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며 2000년대 한국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노래 속에 자신의 고향인 목포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영산강과 유달산이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목포를 떠올리게 된다. 항구는 바다를 마주한 채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와 사람들 사이에서 낭만과 정취가 오롯이 살아 숨 쉰다. 굴곡진 역사의 현장에서도 낭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이 지워지지 않고 현재의 목포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목포의 모든 모습을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목포의 구도심 공간들은 역사가 문화예술과 만나 색다른 설렘을 안겨주었다. 지난 아픈 역사를 겪은 세대부터 미디어에 비친 ‘호텔 델루나’를 기억하는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항구의 낭만을 만끽하길 기대해본다.
| 정연이 (10기 통신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깊이 빠져들고 싶어 문화예술기획으로 한 번 더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발로 뛰어 문화예술의 현장과 친해지고 진실한 마음과 생각으로 글을 쓰겠다. 또한 모양새가 그리 곱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취재하는 통신원이 되겠다. 나는 내가 더욱이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의미 있는 삶은 온전히 나만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