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호] “여러분의 꿈은 안녕하신가요.” - 김수빈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0-06-03 조회수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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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 <경자씨와 재봉틀> 선정단체 역량강화 워크숍

 

김수빈 통신원

 


 5월의 녹록한 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광주문화재단내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기운차게 깔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익산의 중년 여성들로 꾸려진 문학단체‘마고의 이야기 공작소’(이하 마고방)의‘송용희’팀장이었다. 그녀는 2020년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 <경자씨와 재봉틀> 선정단체의 역량강화 워크숍을 위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질문으로 워크숍의 포문을 열었다.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 <경자씨와 재봉틀>은 자신보다도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살아온 50-60대의 완경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생 후반기로 접어드는 변곡점에서 마음 한 켠에 두었던 그들의 진정한 ‘꿈’을 다시금 되돌아봄으로서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삶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날 워크숍에는 <경자씨와 재봉틀>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선정단체인 ‘여정공방’과 ‘문화집단 열혈지구’가 함께 했고 익산 여성의 전화 송용희 팀장님이 특강강사로 초대되었다. 송용희 팀장의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 사례를 나누며, 경자씨와 재봉틀을 잘 꾸려가기 위한 방법과 방향성을 함께 모색했다.

 

▲마고방의 팀장 ‘송용희’씨가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송용희 팀장, 그녀는 포근한 햇살과 같은 여느 6070세대의 여성과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청춘이라 불리어도 될 정도로 생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의 주도하에 진행된 워크숍은 한마디로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저마다의 꿈에 안부를 묻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0살 평생을 자신보다도 가족들의 수저를 놔주느라, 밥을 챙기느라, 반찬을 올려주느라 자신의 안녕은 뒷전이 되어 버린 그녀의 어릴 적 꿈은‘글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말을 했다. 그녀는 꼭 그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반짝이는 눈을 하고는 난생 처음 꾼 꿈에 대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상여날이라고 있었어요. 혹시 나랑 같은 세대이신 분은 아시려나. 사람이 고인이 되면 마을에서는 막 여러 개의 흰 천을 너풀대면서 고인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시신이 담긴 운구함을 들고 함께 가주거든요. 그걸 상여라고 해요. 근데 어떤 날에 꽃상여라고 해가지고, 그 흰 천들이 나풀대는 사이로 예쁜 색색 꽃들이랑 비단이 이렇게 섞여가지고 또 가고 있는 거 에요. 근데 그 날은,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다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오늘 정말 대단하신 분이 하늘로 가셨다. 그 분을 위해 묵념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어렸을 때, 그때 본 그 꽃상여가 나한테는 슬픔과 무서움의 느낌보다도 마음에‘별’하나가 아주 쎄게, 여기에 쎄게 들이박히는 기분이었어요.‘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나 죽을 때, 나도 저렇게 비단 꽃상여처럼 멋있게 할 수 있게.’”

 그녀가 연신 가슴팍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가 말한 꽃 비단 상여(喪輿, 상례 때 시신을 운반하는 기구)의 주인공은 바로‘별’이라는 시를 창작한 조선의 시인‘가람(嘉藍)이병기’선생이었다. 진심이 담긴 그녀의 두 눈엔 정말로 반짝이는 별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느껴본 째릿한 마음과 함께 상기된‘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그녀의 어릴 적 꿈은, 애석하게도 자라나는 그녀의 모습과 함께 자연스럽게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작가의 꿈을 가슴 속에 묻으며 먹고 살아가는 생에 치중하는 삶이 익숙해져가던 60살의 어느 날, 아는 동생의 제안으로 문학모임 마고방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때 작가의 꿈을 꾸었던 그녀의 부푼 마음과는 다르게 마고방의 첫 만남에서 그녀는 큰 실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냅다 그녀의 속마음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 적으라고 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못 미더운 마음으로 첫 만남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 일단 글을 써보기로 했다고 한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녀는 청국장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청국장은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가 첫 아가를 가졌을 시절, 그녀는 엄마가 끓여준 청국장이 먹고 싶어 일을 마친 남편이 돌아온 식사 자리에 고기찌개와 엄마의 청국장을 함께 상에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남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먹는 걸 먹어야지, 왜 이렇게 냄새나는 걸 먹는 거야.’청국장은 그녀의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기를 배에 품고 있던 그 시절, 그녀는 울컥한 마음에 한 솥 차려놓은 팔팔 끓는 청국장을 냅다 주방으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입덧이 심한 그녀가 간신히 먹고 싶어 엄마에게 부탁한 청국장이었다. 그 뒤 그녀는 TV에서 청국장과 두부만 나와도 채널을 돌렸다고 한다. 청국장은 그녀 마음속의 응어리가 된 것이다. 그렇게 청국장은 그녀의 치유적 글쓰기의 첫 번째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청국장에 얽힌 일화를 쓰다 보니, 의아했던 글쓰기의 첫 시작과는 다르게 그녀는 글을 써 갈수록 속이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꼭 묵은 체증이 훅 하고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풀려버리는 것처럼. 그 후 그녀는 청국장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며 웃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청국장은 그녀에게 하나의 시나리오 소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응어리는 속에 두면 응어리지만, 꺼내면 치유가 된다. 그것이 바로 치유적 글쓰기였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속 깊은 곳에 두었던 문학이라는 분야에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머지않아 마고방의 팀장 자리를 맡게 되면서, 마고방 문학 활동의 전반을 리드하며 팀원들과 다양한 활동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마고방의 이름으로 함께 한 경험들을 말해줌에 꼭 덧붙인 말들이 있었다. ‘우리 같은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누가 귀 기울여주겠냐고 생각했다.’지금껏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랴 정 중앙에 서 본적이 아득했지만, 마고방과 함께 한 경험들의 끝에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깊은 울림 그 이상의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12월의 그녀들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자신의 글을 낭독하기도 했다. 한 해의 종착지인 달에 작품발표회였던 것이다. 육십 평생 드레스를 입어본 적 없던 그녀는 민망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강제로 입으라는 반장님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입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드레스를 입고 당당하게 무대로 걸어 나가라던 반장님의 말을 기억한 채 무대로 나아간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마음은 달라졌다고 한다. ‘드레스를 입기를 잘했다.’실크드레스를 입은 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는 그 순간. 그녀는 그 누구보다 당당한 여자였으며, 행복한 여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무대 밑에서 바라보는 가족들 또한 행복의 웃음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마고방의 동료들과 함께하고 머물며, 삶의 질이 올라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가족들도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나 자신이 행복해야 내 주변으로도 행복이 파생된다는 걸 느꼈어요. 마고방에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삶의 질이 올라간 거예요. 가족들도 우선 엄마가 행복하니까 자기들이 더 행복해하더라고요.”

내가 있어야 내 주변도 있다. 이는 곧 스스로의 존재 의식을 파악하여 자기를 존중하고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뜻하는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마고방은 그녀에게 그러한 베이스를 구축해줌과 동시에 그녀를 알아가는 자아실현의 매개체였고 그 이상을 넘어서 생기를 충전해주는 멀티비타민이자 도전의 새로움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열정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함께하던 선생님의 사정으로 글쓰기 강의가 종료된 후, 그녀는 문화예술진흥원 주관의 문학 활동 지원 공모전인‘문학과 한 달 살아보기’의 면접에 지원하여 선발되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문학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됨은 물론이며 요가, 숲에서 살아보기, 북 토크쇼 등 그녀들이 평소에는 쉽사리 겪어보지 못할 체험들을 하며 몸으로 깨닫고 느껴가는 범위는 더욱 확산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중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내비춰진 북 토크쇼를 이야기하며 그 날의 감정선을 다시 내비치기도 했다.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귀 기울여줄까 생각했던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청중들의 큰 메아리가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때 당시의 흥분을 기억하는 듯 준비해온 화면자료를 넘기며 문학이 가지는 힘에 대해, 그리고 그로서 파생된 가치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말했다.

 

“그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예요. 거기서 저는 준비해간 것 이상의 열띤 이야기를 청중들이랑 하면서 서로 치유가 되는 것을 느꼈어요.”

이처럼 마고방의 이름으로 함께한 활동들이 불러오는 힘은 대단했다. 문학으로 시작해 누군가와 서로 치유됨의 대화법을, 친환경을 넘어선‘필환경’의 마인드를, 그녀들의 자랑거리가 된 결과물들을, 그리고 그녀 스스로 존재자체의 가치를 알아가고 보다 더 나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믿는 힘을. 그것들은 결코 그녀가 서 있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들이 아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한 발자국에 마고방의‘함께’라는 힘이 더해져 문학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그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 송용희 팀장이 준비해온 자료 중, 회원들의 후기.   ▲ 마고방의 결과물 책자를 들고 설명하는 송용희 팀장.

 

 

“나는 앞으로 더 기대가 돼요, 남은 내 삶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그리고 사소하고 의미 없는 것들이 큰 행복이 되는 것에 될 수 있다는 걸 안 사실에 너무 감사해요.”

그저 마음속에 묵묵히 놓아두었던 그 꿈을 하나씩 끄집어내려한다. 그리고 그 꿈에 하나의 발걸음,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이 보태졌다. 그렇게 그들은 긴 터널을 지나 함께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들의 한 번 뿐인 생애 전환기로.

 

 광주문화재단에서는 이와 같이 인생 제 2막의 삶을 향한 변곡점에 서 있는 제 2의 송용희 씨를 찾고 있다. <경자씨와 재봉틀>은 그녀와 같은 새로운 시작을 그리고 더 가치 있는 나의 존재를 찾고자 하는 50-60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오는 6월에서부터 참가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또한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본래 <경자씨와 재봉틀>이라는 프로젝트는 광주문화재단의 기획 하에 만들어진 생애전환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서, 광주문화재단으로 찾아와야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었던 접근성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년도부터는 광주시민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보다 더 가까운 일상권역에서 누릴 수 있도록 공모 기획 사업으로 전환되어 '문화집단 열혈지구','여정공방'의 주도하에 북구, 동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업으로 진행 된다.

 

 좋은 삶이란 없다.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매 순간순간 필터를 껴 놓은 프레임처럼 달라질 뿐이다. 자기 자신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이는 아마 성별, 종교, 나이, 국적을 넘어선 전 인류의 공통된 바램 일 것이다. 나는 이번 취재를 함에 있어 보다 더 나은 삶이란 물질적인 가치를 떠나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의미를 알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가 내게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기어코 문화예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김수빈 (11기 통신원)

초시대. 1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데서 파생된 단어 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엔 무엇이 있길래 이리도
숨 가삐 뛰어만 가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 아마도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쉬어감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쉬어감의 다른 말을 곧 문화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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