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age00001.jpeg [size : 3.1 MB] [다운로드 : 31]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동네예술배움터 광주Re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 제다와 다도
문화공장담쟁이 <예향 광주, 차(茶)차(茶)차(茶)>
마민주 통신원
필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 가끔씩 차를 만든다.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만드는 거라니. 뜬금없고 번거로운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보다 차를 만드는 건 쉽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생나물이나 잎을 찬물로 씻어 꼭지를 따고 가지런히 채를 썬다. 모두 프라이팬에 볶은 다음 꺼내 천이나 거즈 위에 올려둔다. 조금 식힌 다음, 모두 뭉쳐 꾹꾹 골고루 눌러 주면 천에 초록색 물기가 배어든다. 그걸 다시 프라이팬에 볶고 또 펼쳐서 식힌다. 한 번 더 볶고 또 펼쳐서 식힌다. 잎에 물기가 사라져 빠삭 마를 때 까지, 연두색 잎들이 진하다 못해 거뭇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한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찻잎은 오래 두지 못하고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다 볶은 찻잎은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뚜껑을 덮고 마지막으로 말린다. 완성된 찻잎을 무늬 없는 공병에 담고 잠그면 드디어 완성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날 땐, 천에 싸인 찻잎을 무식하리만큼 온힘을 다해 퍽퍽 누른다.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아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땐, 프라이팬 위에서 달궈지는 잎들이 타지 않도록 쉴 새 없이 팔을 젓는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쳤을 땐, 마당 바닥에 앉아 수분을 뺏겨가며 식어가는 잎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루를 갈무리하며 목욕하고 나와 오늘 만든 차를 내려 호로록 마시면 분명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다. 향은 코 아래에서 은은하게 머물고, 당연한 듯 내 어깨 위에 올라 타 있던 긴장은 온데간데없다.
▲ 보조강사님의 차 우리는 과정
지난 6월 15일, 학운동 무꽃동 사랑채에서는 <예향 광주, 차(茶)차(茶)차(茶)>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의재 허백령 선생님의 영상을 보며 차와 정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졌고, 그날 주제에 맞게 선정된 영화를 관람한 다음, 영화의 주인공들로부터 교훈을 얻고 응원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의재 허백련은 차를 마셔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고 건강한 정신으로 판단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선생님의 판단을 두고 수강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재해석하였다. 그들은 차를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에 대해 모두 동의를 보냈다. 한 모금의 차는 향기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색의 도구로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차와 영화스토리텔링의 결합을 통해서 수강생들은 광주 예향의 정신을 다시 바라보고, 맑고 향기로운 춘설차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 차에 대한 이론 수업
그런 다음에서야 본격적인 차 수업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이론수업이 아니었다. PPT에 나온 찻잎은 전부 실물로 등장했고, 수강생들은 모두 찻잎을 만져서 촉감을 느끼고 향을 맡아 후각을 자극하였으며 가끔 잎을 씹어 쌉쌀한 맛을 혀끝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 차 유념단계
서 희수 예술강사님은 오늘 수업을 위해 직접 죽로차밭에 올라가 녹차 잎을 따왔다. 풀비린내가 나지 않고 가장 작고 여린 잎들로만 따야 한다. 비온 다음 날이라 잎을 따는데 고생했다는 그녀는 찻잎을 따는 과정조차 자신에게는 즐겁고 위로가 되는 과정이라 말했다. 우리는 강사님이 직접 따온 작고 여린 잎들을 직접 제다해보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1차 덖음 단계가 있다. 차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찻잎의 푸른 기운을 꺾을 수 있다. 이때, 잎들이 타지 않고 골고루 볶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열심히 볶은 잎을 흩뿌려 식힌다. 아직까진 찻잎의 연두색을 간직하고 있다. 그 다음은 2차 유념 단계가 있다. 찻잎을 굴려 말림으로써 찻잎의 세포막을 깨줘서 차가 잘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차와 2차를 어떻게 얼마나 반복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차가 나올 수 있다.
차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보조 선생님은 계속 차를 내리셨다. 덕분에 수강생과 선생님은 수업 내내 달콤하거나 쌉쌀한 차를 다양하게 맛 볼 수 있었다. 특히, 찻잎을 그냥 씹어 먹어본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유념단계가 끝날 때 마다 수강생은 찻잎을 입에 넣고 오물거려본다. 어차피 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신기하게도 덖음과 유념단계를 거칠 때마다 식감과 쓴맛이 다 달랐다.
▲ 수업전체모습
4시간가량 진행된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은 화장실에 다녀왔다 오니 그제야 강의실에 차향이 가득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맑고 향기로운 차향이 온몸을 감싸고 수강생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 찻잎 흩뿌리기
무등산에 다원(茶園)과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전통적인 남종화를 그려온 의재 허백련이라는 근현대사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 힘쓴 그의 치열한 삶을 배울 수 있었고, 광주의 예향정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특히, 그가 남긴 미술작품을 살펴보면 그 당시 생활 속의 운치와 풍류의 순간을 발견해 작품에 그린 순간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다.
시원한 계곡물이 연상되는 차가 있는가 하면, 바위에 코를 박으면 나는 향이 느껴지는 차도 있다. 텁텁함이 혀끝을 감싸는 게 싫지 않은 차가 있는가 하면, 또 정갈하고 단아한 맛이 우아하게 느껴지는 차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차를 음미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운치와 풍류를 끌어내 느껴볼 경험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차를 느끼며 일상에서 쉽게 쓰이지 않던 우리의 근육을 써보자. 이렇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서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해본다.
마민주 (11기 통신원)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될까봐 이곳에 지원해 글을 쓴지 올해로 3년이 됐다. 광주의 문화예술교육현장에 가면 세상에 새롭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하느라 바쁘다. 열정적이면서 무해한 것들에 대해, 사소해 보이는데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들에 대해 취재하고 그것들을 엮어 글로 풀어내고 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내가 바빴던 경험들이 잘 드러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