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호] 광주트라우마센터, 트라우마 극복 프로그램 마이데이(my day), 메이데이(mayday)_최류빈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8-07-03 조회수 594
첨부파일
  • 1.JPG [size : 41.0 KB] [다운로드 : 45]

광주트라우마센터 국가폭력생존자 증언치유 프로그램

트라우마 극복 프로그램

마이데이(my day), 메이데이(mayday)

 

최류빈_9기 모담지기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할까? 몸이 아파서 약을 먹는 것과는 다른 방식임에 분명하다.깊은 마음의 상처,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삶의 골을 한 움큼씩 덜어 빛을 되찾아주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다녀왔다. 

 

 ‘트라우마’란 물리적 혹은 심인성 요인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미하는데 이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우며, 특정한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 방법으로 정의되곤 한다. 트라우마 센터는 문자 그대로 ‘트라우마’의 상담과 인문학 강좌, 소식지 발간과 더불어 특히 ‘마이데이’프로그램을 통한 토크쇼 형식의 해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박선영 열사의 모친 ‘오영자’씨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을 통하여 청해 들었다. 딸의 죽음 이후부터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 없이 부끄러움의 나날만을 보내 왔다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힘이 있다.

  

 이 세상에서 사람 하나 빠졌을 뿐인데, 슬픔의 크기는 딱 사람하나의 크기만 하지 않은가보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 충성서약을 한 신임 서울교대 총장은, 고등교육기관의 정치적 이용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서울교대를 다니다가 비민주적 학내 운영체제 등에 반발하여 학생운동을 시작한 박선영 열사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유린당하던 개인들의 고통을 절감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오영자씨는 그녀의 유서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철저하게 슬픔을 탄압했고 유서 또한 압수해갔다. 주검 위에 면포를 덮고 마지막으로 안아주던 시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나이는 이제부터 딱 한 살이다. 선영아 너는 네 목숨보다 민주화가 중요했나보다. 너는 살고 이제 나는 죽었으니, 네 못 이룬 꿈 내가 이룰거다.

 

 트라우마센터라는 명패에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이 좋은 자리가 삶의 묵직한 한 구석의 절망을 희석시킬 수 있을지 반문해보곤 했다. 처음엔 그랬다.

  

분분한 삶이었다.

 그는 한 시절의 ‘엄마’였다. 계엄군에 잡혀가는 학생들을 두 트럭씩 빼내오고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언성을 높이며 학생들에게 용기를 복돋아주었다. 법원에서는 판결문을 찢어버리고 독방 옥살이를 하며 고문실에 갇혀서도 그는 유리창을 깨버리는 등, 당당하고 실행력 넘치는 엄마였다. 삼십여 년 이상의 분투 중에서 한 조각을 꺼내놓았을 뿐인데, 장내는 그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지나간 역사는 결코 활자로 모두 얻을 수 없기에, 살아있는 삶의 체험적 진리를 어렵사리 끌어안느라 모두가 분주했다. 

 

 참 분분한 삶이었다.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 거울을 보지 않는 미련한 엄마, 그러면서도 딸의 사진을 데모 현장마다 가슴에 품고 겁 없이 뛰어드는 용감한 엄마. 종일 가족 몰래 통곡하다가도 밥 할 시간이 되면 벽을 붙잡고 부엌엘 가 남은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그 시절 힘없던 한 여자가 거대한 세상을 온 몸으로 맞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거웠다. 단상 위 테이블에 물병 두 개가 가만 놓여있다. 문득 그가 하나를 들자 남은 하나, 진동 없이도 거칠게 흔들린다. 소중한 하나를 잃는다는 건 모든 것의 상실, ‘트라우마’라는 비 일상어가 가슴을 막 헤집고 들어온다.  

  

슬픔의 중력, 우리가 같이 울어줄게

 그는 증언을 이어가면서 자꾸만 자신을 못난 엄마라고 불렀다. 빈 의자를 앞에 두고서 딸 선영이가 돌아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 같냐는 말에, ‘더 투쟁하고 더 열심히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답할 정도로 마음의 짐이 무거워만 보였다. 저 빈 의자에 앉아서 평생을 지속해 온 슬픔의 중력을 거스르고, 고맙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끝 무렵에 와서야 나의 시집 <장미 씨, 정오에 피어줄 수 있나요>에 수록된 오월 정신을 위로하는 시를 읽어줄 기회가 왔다. 그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를 비롯하여 참가자 대부분이 울어주고 웃어주는 과정에서 슬픔이 과거형으로 옷을 갈아입는 듯 했다. 시를 읽어주면서 나는 잠깐이나마 빈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위로하는 박선영 열사가 되볼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안아주었고 나도 그를 안아주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비루한 시로나마 광주 역사의 증인을 위로했으니, 시인의 삶을 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리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서도 다정한 언어로 슬픔에 공감해주었다. 이 소통의 시간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지막에 꼭 진행하게 되는데 치밀하게 계획된 치유의 시퀀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회자 또한 전문의며 동석자들은 종교인, 상담심리학과 학생, 치유프로그램 마이데이의 지난 주인공들, 일반 시민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가 삶의 비통함과 시린 무게감을 다 털어내진 못했을 수도 있다. 평생을 업고 살아온 딸에 대한 이 비장한 어부바가 단 한 번의 좌담회로 모두 날아갈 수는 없다. 다만 트라우마센터의 치유프로그램 마이데이(my day)는 점진적인 구조를 진행하는 듯하다. 삶의 총체적 과정에서 보내온 대상자들의 구조신호(mayday)를 지긋이 목도하면서 손끝부터 조금씩 아린 기운을 몰아내는 것이다. 손끝부터 한 마디씩 사람을 덥히다가 손을 잡아주고 결국 안아주는 것이다. 이번 강연이 오영자씨를 비롯한 참여자들의 마음에 울림이 되는 듯 했다. 사회적 선의가 조금씩 이곳저곳에서 작동할 때, 도처에 널려있던 슬픔들이 아스라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찬물에 들어갈 때 발끝부터, 아주 조금씩 몸에 물을 묻힌다. 슬픔 너머에서 기다리는 저 먼 광원(光源)을 향해 한 줌씩이나마 발을 적시는 시간이었다. 

 이제 먼 바다에서 만날 시간이다.  

 

 

최류빈 (9기 모담지기)                                                                                                                          내가 내뱉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된다면 좋을 텐데, 만약 그런다면 나는 하얗게 밤을 새우면서라도 무슨 말이든 해줄 거다. 단 한 사람과 공진하기 위해서라도 자꾸만 활자들을 내뱉는 지독한 버릇, 나는 단어로 언어적 문신을 그려댄다. 그렇지, 언어라는 건 정말 재밌다 내 앞에 잔뜩 차려진 재료들 같아. 나는 여기선 한철 모담지기라는 이름을 살 예정이고, 분명 또 우린 활자로 언제 어디선가 만날 거다. 이렇게 짧은 소개가 될는지- 모든 건 이름 모를 활자 밖 당신에게 맡긴다

 

잔잔한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