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기를 넘어서다: 듣고 말하고 느끼고, 세계를 배우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어린이들, 어른들 모두 초대합니다.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7기 통신원 조은혜
‘독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체 연령을 대상으로 조사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독서량은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다. 또한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약 25%나 된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그나마 어른보다 독서량이 많다지만, 여전히 세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독서는 우리의 취미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잠이 안 올 때 책을 읽으면 바로 잠들 수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잠들기 전, 할머니 무릎 위에 앉아 “옛날이야기 해줘!”하고 졸랐다는 어른들의 회상은 요즘 세대에겐 꿈만 같다. 지금 아이들은 책보다는 TV,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를 접한다. 어린이들에게조차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하면 책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을까?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어린이도서관에서 진행된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프로그램은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준다. 바로 ‘감각’을 더 많이 이용할 것. 보통 사람들은 책을 ‘눈’으로만 읽는다.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중에 시각, 겨우 한 가지만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감각으로선 가만히 있어야 하니 좀이 쑤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각적 독서를 소리를 내서 읽거나 혹은 손동작을 더해서 읽으면, 눈만을 이용한 독서의 지루함이 사라진다. 더 많은 감각을 사용할수록, 책의 내용과 내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눈으로만 읽으면 책속 주인공을 타자의 시선으로 보게 되지만, 듣고 피부로 느끼고 그 기분을 맛보게 된다면, 책의 주인공과 나를 일치시킬 가능성이 높다.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프로그램은 아이와 가족이 함께 즐기는 동화 구연 프로그램으로, 국가, 나이와 상관없이 동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만남의 장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와 아이 동시에게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잘 설명해주었다. 감각을 이용해, 아이들에게는 재밌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 구연을, 부모에게는 앞으로 자녀들에게 동화를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것이다.
5월 14일 날씨가 화창한 토요일, 어린이문화원에 수많은 어린이와 부모들이 몰려들었다. 다양한 체험과 활동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 체험, 음악 체험, 타문화 생활 체험 등…. 그 사이 ‘어린이 도서관’이 위치해 있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적인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데, 그 가운데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정적인 책을 읽어주는 거라니! 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프로그램을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모두 찬 뒤에도, 참여 문의가 끊이지 않았고, 동화 구연이 시작된 후에도 창밖 아이들이 유리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동화구연을 함께 즐겼다.
‘응애응애’ 아기부터 ‘에헴에헴’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목소리로 마음을 사로잡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눈을 감고 들었더니, 귀여운 꼬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꼬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다 큰 어른, 아동문학가 임현진 작가가 있을 뿐이다. 임현진 작가는 동화작가이자 구연가다. 신춘문예에 동시, 동화 등으로 당선되면서 오래전부터 태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을 직접 쓰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화 구연가답게 그의 목소리는 자유자재다. 아기에서부터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 흉내 낼 수 있다. 아기 목소리로 “엄마, 배고파~”, 아빠 목소리로 “아빠는 너를 너무 사랑해~”, 할아버지 목소리로 “아이고, 허리야!” 남녀노소를 넘나든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신기한 듯 그를 쳐다볼 뿐이다. 목소리가 바뀔 때마다 재밌는 듯 깔깔댄다.
“책을 눈으로만 읽으면 독서가 되겠지만, 감정을 넣어서 읽으면 동화 구연이 돼요. 그럼 이제 저를 따라해 볼까요?”
듣기만 하던, 동화 속 목소리를 따라할 차례가 왔다. 동화 구연을 통해서다. “숲 속에 아기 새가 태어났어요. 해님 아저씨가 아기 새에게 말하네요. 다 같이 해님 아저씨 목소리를 따라해 볼까요?” 어린 아이들이 까르륵대며 ‘아저씨 목소리’를 흉내 낸다. “아기 새야, 어서 크거라.” 집중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손 유희’ 활동으로 손동작도 가미된다. 동화를 입으로 읽으며, 그에 맞는 행동도 함께 하는 것이다. “‘커~다란’이라고 말할 때는 손을 가장 멀리 뻗어서 원을 그려봐요.”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의 집중력은 길지가 않다. 30명의 아이들이 다 함께 한 곳에 집중하기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현장은 상황이 달랐다. 임현진 작가의 동화구연에, 아이들은 모두 빠져들었다. 목소리로 동화 속 조그만 ‘아기 새’와 ‘해님 아저씨’, ‘구름 할아버지’, ‘달님 아줌마’를 불러댔다. 앉아서만 따라하는 게 아니다. 번쩍 번쩍 손을 들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구름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내보기도 한다.
수업에 참여한 부모들 역시 매우 만족스럽다는 눈치다. 어린 아들과 함께 온 김송희 씨는 수업 소감에 대해 “아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지만, 실감나게 읽어주는 방법에 대해선 여태 알지 못했다”며 “책을 더 재밌게 읽어줄 방법을 알게 돼 의미 깊었다”고 말했다.
동화를 통해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이해하다
물론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동화 구연 방법’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기획의도가 있다. 바로 ‘문화다양성 체험’이다. 다문화가정 관련 소재를 다룬 동화 구연을 통해 아이들이 주변의 다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이번 동화 구연에선 아이들은 ‘개구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빨간 개구리’와 ‘초록 개구리’가 처음엔 서로 다른 색 때문에 적대시하다가, 비가 온 후 진흙탕에서 뒹굴고 모두 갈색이 돼 색을 구분하지 못해 다툼 없이 함께 잘 어울려 지내며 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얘기다.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색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 같지만, 모두 갈색이 되고 나니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결국 다 같은 개구리인거에요.”
아시아문화원 어린이사업부 김미설 담당자는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주로 ‘아시아 동화 구연’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구성의 가족이 있으며, 다문화 가정은 이제 우리나라의 문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동화를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놀러와, 이야기 숲으로’ 프로그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월 11일, 6월 25일 토요일에 또 다른 동화구연가를 모시고 ‘동화 속 아시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많은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문화에 대해 배우고 동화구연의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보고, 듣고, 움직이는 동화’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해, 독서의 즐거움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