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네, '너랑 나랑 함께 만들자'>_조은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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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07-06 조회수 1,341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네, ‘너랑 나랑 함께 만들자’
‘내 동네’에 ‘내가 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꼬불꼬불 런웨이>


통신원 조은혜

“한 사람이라도 큰 성당의 이미지를 품고 돌무더기를 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돌무더기가 아니다.”

‘어린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명언이다. 누구나 스쳐지나가는,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달리 본다면 그 사물에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관광지 이름들을 통해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제주도의 용머리 해안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냥 지명을 딸 수도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했기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해안이 아닌, 용머리 해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텍쥐페리의 이 명언은, 널리 알려져 있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과도 비슷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남들이 흔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은 특별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그렇다. 실제로, 평범하고 일상에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의미를 주고 탐구하는 작업은 시인들이 주로 시를 쓸 때 사용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를 읽기만 해도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트컬쳐 너랑나랑’에서 진행 중인 <복면 쓰고 꼬불꼬불 런웨이> 프로그램 역시, 아무 흥미 없이 지나다녔던 동네를 개개인의 놀이터로 바꿔주고 있다. ‘사물 새롭게 보기’를 통해서다. 참여자들은 광주 광산구 신가동 인근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이다. 매주 토요일, 아이들은 마을을 둘러보고 탐색하고, 스쳐지나갔던 마을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동네를 바라보고, 공간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신가 도서관 위 공원, 마당집 등 동네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내가 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복면 쓰고 꼬불꼬불 런웨이>는 그 이름만큼, ‘걷기’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마을을 많이 걷고 탐색해야, 마을에 대해 아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마을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캐릭터’를 각자 만들어 복면으로 착용하고, 패션쇼처럼 런웨이쇼를 펼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마을 공간을 새로 보고, 주체적으로 놀이를 만드는 마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동화 속 캐릭터,
내가 상상했던 모든 것이 우리 마을에 나타나다.

 “우리가 지난주에 마을을 돌아보면서 찍었던 사진을 구경해볼까요?”
 “방패를 닮았다고 생각해서 촬영한 거여요!”
 “저는 비행접시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놀이와 탐사에 앞서, 앞선 수업에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길에서 흔하게 보고 지나치는 맨홀 뚜껑 사진이 스크린에 나오자, 아이들은 반갑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는 방패를, 누군가는 비행접시를 닮았다고 말했다. 맨홀 뚜껑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꽃, 담벼락 사진이 가득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었던 아이들은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나무, 꽃, 담벼락으로 보지 않았다. 다른 의미를 부여해 마을을 새롭게, 더 기억에 남도록 했다.
 
  <꼬불꼬불 런웨이> 프로그램은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돼 진행된다. 첫 번째는 ‘동네 탐색대’ 활동이다. 동네 주변 지도를 그려보고 동네를 탐색하기 위한 밑 작업을 하는 것이다.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탐험하기 전, 탐사 규칙을 정하고 명함을 만드는 등의 작업을 했다.

  두 번째는 ‘동네 올림픽’이다. 동네를 탐색한 후, 그곳에 형태를 기억하고 표현하고 놀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우리만의 놀이터를 만들고 이웃들과 함께 운동회를 여는 것이 목표다. 취재 당일이었던 6월 11일은 바로 이 걷기 올림픽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챕터는 각각 ‘공간 스토리’, ‘나는야 공간 디자이너’, ‘복면 쓰고 불쑥’이란 이름이다. 동네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오브제를 활용해 나만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고, 공간 연출을 통해 복면을 쓰고 런웨이 쇼를 펼칠 예정이다.


사람처럼, 동물처럼, 식물처럼... 다양하게 걸어보기

  6월 11일은 ‘걷기 올림픽’의 날이었다. 아이들은 흥미만큼 열의 또한 대단해 보였다. 어떤 캐릭터를 흉내 내면서, 어떻게 걸을지, 어떤 미션을 할지 너도 나도 손을 들고 아이디어를 냈다.

 “귀신처럼 머리를 늘어뜨리고, 강시처럼 콩콩 뛰면서 걷는 건 어때요?”


  강사 선생님은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기 보단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물으며, 함께 올림픽 코스를 정했다. 항상 걷던 공원을 좀 더 특이하게,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걷는 방법을 함께 논의했다. 그 결과 재밌으면서도 특이한 걷기 코스가 만들어졌다.

   첫 번째 코스, 뚱뚱한 사람처럼 뒤뚱뒤뚱 걷다가 줄넘기 10개를 뛰고 날씬해져서 뛰어가기.
   두 번째 코스, 욕심쟁이 강아지가 돼서 과자 하나 다 먹고 가기.
   세 번째 코스, 문어처럼 흐느적거리고 걸어와서 물총으로 종이컵 넘어뜨리기.
   네 번째 코스, 할머니처럼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기.
   마지막 코스, 타잔처럼 ‘아아아~’하면서 골인지점까지 뛰어오기.


 코스가 다 정해지자, 아이들은 신가공원에서 다 함께 걷기 올림픽을 즐겼다. 직접 개사한 ‘탐험대 노래’가 울려퍼졌다. “동네 길을 지나서 가자~” 그간 동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친구가 문어처럼 흐느적거리고 걷는 모습, 타잔처럼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서로 웃음꽃이 피웠다. 1등을 하지 못한 팀도, 서로를 탓하는 대신 특이한 걷기 자체를 즐겼다. 마지막엔 이긴 팀, 진 팀 구분하지 않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마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서로에 대한 우정도 쌓았다.


 컴퓨터 게임 등 다른 것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초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토요일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동네를 둘러보는 것이 새롭고, 마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주체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기획자인 양정인 선생님은 “이 마을은 재개발 지역으로, 건물을 헐고 새롭게 마을 짓는 단계에 있다”며 “빈 건물이 많은 만큼 마을에 대한 정체성과 애착이 없는 아이들이 마을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요즘 시대, 본인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파트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더더욱 동네에 정을 붙일 일이 없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해진 것도 오래다. 그렇게 때문에 마을을 탐험하거나 본인 중심으로 마을의 놀이거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더 특이하고, 특별하다. ‘꼬불꼬불 런웨이 쇼’가 일시적 행사를 넘어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길, 본인이 만든 만큼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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