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멋과 흥을 찾아서
효덕초등학교 국악분야 ‘예술강사 박은비선생님’
통신원 박고운
등허리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한여름에도 우리 가락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광주효덕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은 일곱 차례에 걸쳐 박은비 선생님과 국악 수업을 하는데, 그 중 두 차례로 나누어 살짝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로 참관한 수업은 ‘금다래꿍’ 이라는 서도민요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금다래 ‘꿍‘을 부를 때 ’꾸우웅~’ 이런 식으로 콧소리를 내며 잘게 떨어주어야 하는 게 포인트인 민요이다. 선생님께서 ‘꾸우웅’ 하고 떠는 음을 시범 보이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꾸우웅‘ 소리를 따라 내보며 장난치듯 시김새를 연습한다. 뒤이어 손으로 가락 선을 따라 그리며 민요를 알아간다. 판소리를 전공하신 선생님의 맛깔 나는 ’진짜’ 목소리를 들으니 아이들은 한결 신이나 민요를 부르는 것 같다.
박은비 선생님께서 ’싸름‘과 ’수심가‘ 등의 다른 서도 민요도 불러주셨다. 아마 담임선생님께서 이 민요를 가르쳤다면 CD를 틀어 소리를 들려주셨을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히 스피커에서 흘려 나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 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국악선생님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니 한명도 빠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40분 동안 노래만 부르면 목도 아프고 지겨울 터. 이번에는 종목을 바꾸어 단소 연주다. 지난 시간에 배운 동요 ‘비행기’를 불어본다. 나도 초등학교 때 단소를 불면 소리가 안 났던 경험이 있어 아이들 한 명 한 명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선생님의 탁월한 가르침 덕분일까 모두 소리가 잘 나는 듯 했다. 물론 악보 보는 게 힘든 몇몇 아이들은 잘 따라가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 같이 열심히 가락을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뒤에서 숨어 박수를 보냈다.
학교 예술 강사사업 중 국악 분야에서는 민요, 장구, 단소, 소금, 사물놀이, 가야금 병창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준다. 40분 수업동안 단소만, 장구만 치면 학생들이 너무 힘들고 흥미도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박은비 선생님께서는 보통 가창을 하다가 장구도 쳐보고, 단소도 불러보면서 40분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가시려 한단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발달특성상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수업할 때 힘드시진 않을지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워낙 반마다 달라서요.” 하고 대답하신다. 어떤 반은 신명나게 활동을 잘하며 수업이 끝난 뒤에 국악 곡 제목을 따로 물어보는 열정적인 학생들도 있단다. 반면에 소극적인 반은 노래 소리가 너무 적고 반응이 없어 수업할 때 축 쳐지기도 한다고.
아이들에게 ‘국악은 재미없고 5분만 들어도 졸리다’는 편견이 있기 마련이다. 박은비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편견을 깨주기 위해 국악동요도 많이 들려주고 창작판소리 ‘난감하네’ 등과 같은 공연 영상도 자주 접할 기회를 마련하신다. 실제로 박은비 선생님께서는 국악아카펠라 ‘수‘ 단원활동도 하고 있으며 공연기획도 직접 하신다. 그 중 웹툰과 접목한 판소리 공연을 기획하였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경험도 말씀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다.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웹툰과 국악의 만남이라. 어떤 공연일지 나중에 기회 되면 꼭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수업시간에는 지역별 민요를 감상하고, 여러 지역의 아리랑을 불러보는 것이 수업 목표였다. 일단 서도민요, 경기민요, 동부민요, 남도민요, 제주민요 등의 음악적 특징을 공부했다. 그 다음에는 여러 지역의 아리랑 악보를 붙임딱지로 붙여 아리랑 박물관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졌다. 교과서 뒤 부록에는 악보 붙임딱지(스티커)가 있어서 좀 더 활동적인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삼 요즘 교과서가 얼마나 세련되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다양한 아리랑 민요를 듣고, 어떤 지역인지 알아맞혔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아리랑이 있었던가. 기본적으로 많이 알려진 경기아리랑, 진도 아리랑 외에도 해주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까지 다양한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래만 부르면 목이 아플 터, 이윽고 가야금이 등장했다. 처음 보는 가야금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먼저 선생님의 시범연주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의자에 앉아 가야금을 눕혀서 연주하자, 아이들은 ‘기타’를 치는 것 같다며 깔깔깔 웃어댔다. 이제 가야금을 배워서 아리랑 연주를 해보자고 하니, 아이들은 내가 직접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처음에는 가야금 줄에 번호를 매겨서 1번부터 12번까지 뜯어보았다. 그다음에는 아리랑 악보를 번호로 만들어 3-4-3-4-5-6-5-6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불러본다. 그 다음 그 번호에 맞게 가야금 줄을 뜯으면 아리랑 한 곡이 완성되었다. 생각보다 쉬워서 아이들도 곧잘 따라했다.
가야금이 6대밖에 없어서 모둠에서 한명씩 연주를 해보았는데, 아이들이 순서가 바뀔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을 위한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또한 다른 아이가 연주할 때에도 관심을 갖고 박자도 맞춰주고 같이 불러주는 모습을 보았다. 소리 없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국악이 스며들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재미있었던 것은 남자아이들이 가야금 줄을 뜯을 때 힘자랑을 하던 것이다. 서로 세게 튕기다 손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해대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니, 나름 그럴듯한 아리랑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가야금병창이라고 하기는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아리랑 연주를 하면서 노래까지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국악을 배워야 하는 까닭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평소 국악을 접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한참 기억을 더듬어내더니, 어렴풋이 티비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나라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음악 역사는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의 고유성은 없어진다. 우리나라 국민만이 가지고 있는 흥과 멋, 개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박은비 선생님의 교육목표는 학교 국악 수업을 통해 국악 향유 기회를 넓히고 국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미래의 문화소비자이다. 지금부터 국악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국악 공연도 보고, 국악 관련 직종에도 종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셨다. 또한 음악은 삶속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국악 향유 층이 많아질수록 다양한 분야와 접목한 예술작품도 풍부해 질수 있다고 믿는단다.
박은비 선생님께 국악의 매력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선생님도 역시 어렸을 때 초등학교 가야금 부서에서 국악을 처음 접하였는데, 서양 음악과는 다른 독특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단다. 서양 음악은 보통 박자가 딱 떨어지기 마련인데, 우리 국악은 2분박, 3분박처럼 박자와는 다른 장단 개념이 새롭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처음 국악을 접하게 할 때 장구 장단을 기본으로 가르치신다. 아이들이 기본 장단뿐만 아니라, 맺는 형을 구분할 줄 알고 다함께 소리가 맞았을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신단다. 또한 처음과 달리 아이들의 국악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을 때도 기쁘시다고.
실제 국악 수업을 참관해보니 40분 내에 많은 걸 가르치시는 것 같아 부담스럽지 않은지 여쭤보았다. 실제 교과서를 기준으로 보면 한 곡에 두세 시간 정도 배당되어 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시간 배당기준이나 지도요소가 들어간 지도서를 받아보신 적은 없다고 하셨다. 최대한 교과서에 나와 있는 국악 곡을 한 시간 안에 끝내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많은 내용을 한 시간 안에 압축하여 수업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평소 수업준비는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거나 예술강사협회에서 수업방법을 공유하기도 하시고, 의무연수나 자율연수 등을 통해 지도방법을 연구하신다고 한다. 지도서가 있다면 평소 수업준비를 하거나 수업계획서를 짤 때 훨씬 수월할 텐데, 그 부분이 학교와 소통이 안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덧붙여 학교 측에서 갑작스러운 요구를 하여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하니 학교와 예술강사간에 충분한 사전 협의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수인 것 같다.
국악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평소 국악 수업시간 중 기억에 남는 시간을 물어보니 바로 오늘이란다. 그 이유는 가야금을 실제로 연주해본 적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 학생은 앞으로도 가야금을 배우고 싶고, 장구나 다른 국악기들도 기회가 되면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국악이 좋은 이유를 물어보니 복잡한 생각 거치지 않고 바로 말을 꺼낸다. “수학은 계산해야 되고, 사회는 암기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국악은 그런 거안해도 되니까 재미있어요.” 요즘 아이들에게 성적과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 장단을 얹은 민요도 부르고, 가야금도 타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 “국악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재미있는 동영상을 잘 보여주시고, 친절하셔서 국악수업에 100퍼센트 만족해요.”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서양음악에게 자리를 내준 우리음악 국악. 하지만 이렇게 국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고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앞으로도 국악이 더 많이 사랑받기를 소망해본다.